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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유령 작가가 전하는 글쓰기의 정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주제다. 무엇(What)을 말하고자 하는가가 글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목적도 중요해진다. 왜(Why) 글을 쓰느냐에 따라 주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문체나 스타일도 중요하다. 어떻게(How)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매체도 중요하다. 블로그, 신문, 잡지 등 어디(Where)에 실리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글이 실리는 타이밍도 따져봐야 한다. 언제(When) 실리느냐에 따라 명문이 되기도 하고 망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누가(Who) 글을 썼느냐는 점이다. 똑같은 주제, 목적, 문체, 매체, 타이밍이더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자신을 감춰야 하는 직업이 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표현해야 한다. 바로 연설문을 쓰는 '스피치라이터'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였다. 연설은 강원국의 것이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숨기고 대통령을 드러내야 한다. 저자는 그런 자신을 두고 유령 같은 존재, '고스트라이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으면 강원국이라는 저자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큰 별을 만나는 재미


  <대통령의 글쓰기>는 일단 글쓰기 책이다. 하지만 교과서 같은 여타의 글쓰기 책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흥미롭다.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거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피치라이터로서 두 대통령을 도왔다. 그때 느꼈던 인간적인 술회를 책 전반에 걸쳐 풀어낸다. 인간 김대중, 인간 노무현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언론에 드러나지 않았던 각종 일화도 소개한다. 당시에 정치적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뒷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것이다. 개인적으로 탄핵과 대연정에 관한 당시 청와대의 속사정을 들춰보는 것이 몹시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야사로 점철된 책은 아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철학을 소개하고, 어떻게 연설을 통해 표출되는지 깊이있게 풀어낸다. 그 와중에 두 인물의 사상이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단순한 글쓰기 교재를 넘어 두 거물의 사상과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평전'이라 볼 수도 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지만, 글쓰기 방법론보다 사람이 먼저 보인다. 게다가 그 사람이 대한민국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거인이다. 이토록 매력적인 소재를 풀어내다니! 2대에 걸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를 지낸 저자의 유별난 경력이 몹시 부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같은 철학, 다른 글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이었으나, 깊은 곳에 담긴 내용의 핵심은 글쓰기였다. 저자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곁들이며 김대중과 노무현의 글쓰기 철학을 풀어낸다. 그런데 그 철학이 누군가와 닮았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 나왔던 철학과 매우 흡사하다. 


  '근거를 제시하라.'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라.'

  '쉽게 써라.'

  '진정성 있게 써라.'

  '짧고 간결하게 써라. 군더더기는 글쓰기의 적이다.'

  '문장은 자를 수 있다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유시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한때 같은 정당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동지이자 전우들이다. 그들이 비슷한 글쓰기 철학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일까? 나는 오히려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사상이 같다고 해서 글쓰기까지 같으리란 보장은 없다. 서로 다른 학력을 가졌고, 전공도 다르다. 게다가 세 사람은 살아온 세대조차 큰 차이가 난다.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비슷한 철학을 보여주는 걸까?


  여기서 유시민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못난 글은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세 사람은 훌륭한 글을 쓰기보다 못난 글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비슷한 글쓰기 철칙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글쓰기 실력은 못난 글을 벗어나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다. 모두 달변가이자 달필가로 이름을 날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글쓰는 스타일도 다르다. 김대중의 글은 논리적이고 거대하다. 노무현의 글은 친근하면서도 강단이 있다. 유시민의 글은 매섭고 동시에 뜨겁다. 같은 철학을 품었더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글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 




  강원국의 꿀팁


  <대통령의 글쓰기>가 김대중과 노무현의 글쓰기를 다루고 있지만, 저자는 엄연히 강원국이다. 이 책은 스피치라이터로서 쓴 글이 아니다. 작가 강원국이 쓴 글이다. 김대중과 노무현만 드러나서는 안 된다. 강원국이 보여야 한다. 그럼 도대체 그의 흔적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글쓰기 노하우를 전수하는 지점에서 강원국의 흔적이 드러난다. 특히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과 비교했을 때, <대통령의 글쓰기>는 훨씬 더 실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글을 쓰는 철학과 태도를 중심으로 교과서처럼 쓰여진 글이다. 구체적인 예시가 등장하지만, 세부적인 지침보다는 거시적인 글쓰기 개론을 이야기한다. 글쓰기 입문자에게 이보다 좋은 교재가 없다는 평가가 딱 어울린다. 


  그에 반해 <대통령의 글쓰기>는 체크리스트 같다. 글쓰기라는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한 세부적인 지침들이 등장한다. 현업에서 종사하는 사람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료를 검색하는 방법이었다.


  "내게 포털사이트는 훌륭한 연장통이다. 연장통 쓰는 요령은 이렇다.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클릭한다. 우측 상단의 '검색'을 클릭한다. '뉴스 상세검색'을 클릭한다. 검색어를 입력하고, 하단의 '칼럼'을 클릭한다... 해당 칼럼이 너무 많은 경우에는 '제목에서만'을 클릭하면 된다."


  자료 찾기는 언제나 막막한 일이다. 글을 쓴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럴진대,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눈앞이 깜깜할 정도로 아득한 일이 된다. 그래서 강원국이 선사하는 꿀팁에 눈이 번쩍 뜨였다. <대통령의 글쓰기>에는 이런 꿀팁이 곳곳에 놓여있다.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아무리 꿀 떨어지는 조언이라도 너무 많으면 쉽게 기억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40개의 챕터와 10개의 이야기를 통해 글쓰기 노하우를 전수한다. 한 번에 모두를 파악하기에는 그 수가 많다. 저자는 책에서 '단순 명료하게 써라',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을 이긴다.'라고 말했지만, 글쓰기 교재로서 단순 명료한 철학을 제시하진 않았다. 오히려 큰 틀에서 명료한 철학을 제시한 점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 더 나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실용적인 지침이 등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연설문과 다르게 책은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다. 알찬 내용을 꾹꾹 눌러담고 싶었던 저자의 심경을 이해할 필요도 있다. 따라서 무작정 읽기보다는 책에 어울리는 독서가 필요하다. 나는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메모를 활용한다. 챕터의 마지막 여백에 해당 챕터의 내용을 요약하여 적는다. 이렇게 정리하면 재독할 때 큰 도움을 준다. 이런 책은 한 번 봐서는 안 된다. 여러 번 읽고, 각종 꿀팁을 활용해 본 뒤, 다시 또 읽어야 한다. 그렇게 모든 노하우을 내 것으로 체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며...


  <대통령의 글쓰기>는 김대중, 노무현의 이야기를 담은 강원국의 책이다. 청와대 뒷이야기와 두 거물의 사상으로 흥미를 끌어내다가도, 책의 핵심인 글쓰기에 이르면 강원국의 흔적이 또렷이 드러난다. 특히 스피치라이터로서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의 생생한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다. 두고두고 꺼내 봐야 할 참고서 같은 책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는 결국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요소를 한 명의 사람 속에서 한 줄기 생각의 정수로 뽑아낸 것이 글이다. 글쓰기 철학은 같을 수 있으나, 이를 풀어내는 사람이 다르면, 글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사람의 글이 명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글은 그들 자신이 콘텐츠였다. 그 어떤 근거보다 더 큰 신뢰를 가져다주는 인생이 있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모습을 독자들이 기억하기에, 그들의 글은 명문이 되지 않았을까? 저자 강원국은 그런 두 사람의 삶을 글쓰기로 엮어 한 권의 정수로 뽑아냈다. 나는 이 책도 기꺼이 명저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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