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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평

[짤평] <손님> - 이걸 가지고 이거 밖에 못하나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1. 예고편에서 보시다시피 독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外) 여기에 내전이라는 민족의 비극과 무당이라는 토속신앙을 섞어 넣었습니다. 원체 호러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서양 판타지와 토종 호러를 어떻게 접목하였는지 궁금하다 보니, 관람 전에는 꽤 기대하던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홍보 중에 특히 '손님'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손'은 방위와 날을 따라다니면서 인간생활에 영향을 주는 귀신이라고 합니다.(外)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접대에 대한 두려움이 이방인을 손님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피리부는 사나이'와 '손님'의 결합이라니! 어떤 재밌는 이야기가 펼쳐질지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2.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2-1. 스토리는 흠 잡을 수준은 아닙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전후(戰後)라는 시대적 배경과 잘 접목했습니다. 다만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라는 기분이 많이 듭니다. 촌장이라는 존재 때문에 <이끼>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혈의 누>라는 작품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2-2. 그러나 이야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원작처럼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을 드러내고자 했는지, 시대의 비극을 들추고자 했는지, 단순히 광기를 드러내고자 했는지... 뭐 하나 뚜렷한 주제 없이 우왕좌왕합니다. 홍보에서 강조하던 '손'의 개념은 작품에서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도 않더라고요 -_-;;

  2-3. 게다가 되도 않는 유머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튀어나와 몰입을 방해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반드시 있어야 했던 멜로도 겉도는 기분만 선사합니다.

  2-4. <손님>은 김광태 감독의 입봉작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영화의 단점들이 신인감독의 전형적인 실수라고 느껴져 많이 안타깝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집중과 선택이 있었다면 더 나은 작품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3. 때깔은 참 좋습니다. CG도 훌륭하고, 미장센도 괜찮았습니다. 특히 시골 마을을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음산한 기운을 자아내는 장면이 인상적이더군요. 이렇게 훌륭한 감각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요. 빛나는 신들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요. 제대로 꿰어내질 못했으니 말입니다. 





  4. 이성민, 류승룡, 천우희 등은 이름값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준, 정경호 등의 조연들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요. 아들 영남역을 맡은 구승현 군은 특히 좋았습니다. 한데... 작품에 몰입이 안 되니... 좋은 연기라는 구슬도 빛이 바래더군요. 좋은 작품이 좋은 연기를 끌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이(裏)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작품이 나쁘면, 좋은 연기도 말짱 도루묵입니다.





  5. 호러를 표방하지만 무섭다는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요즘 인기를 끄는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연출을 더 좋아합니다. 토속신앙과 미스터리가 자아내는 스산한 분위기,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마을의 풍경. 그리고 그 분위기의 끝에 찾아오는 공포와 광기. <혈의 누>가 이러한 연출을 잘 살렸던 작품이었죠. 하지만 <손님>은 초중반 이야기의 엉성함과 쓸데없는 개그 욕심에 '젖어드는 공포'를 놓치고 맙니다. 그나마 클라이맥스에 호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공포와 광기를 보여주긴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워낙 잘 말아먹어서 별로 탄력을 받지 못하는 기분입니다. 





  6. 좋은 소재, 검증받은 배우, 훌륭한 영상. 이런 좋은 구슬들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꿰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다듬는다면 정말 좋은 영화로 거듭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참 많이 남습니다. 보러 간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절대 추천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줄평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 좋은 소재, 검증된 배우, 훌륭한 미장센. 이런 빛나는 구슬을 갖고 있으면 뭐하나! 이를 꿰어내는 이야기가 우왕좌왕 하는 것을... ★★☆





※ 스포일러를 포함한 <손님>의 리뷰가 한 편 있는데, 너무나 공감이 가서 링크 걸어놓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한 번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http://blog.naver.com/blue9182/220412399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