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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리뷰]<군도 : 민란의 시대> - 누구의 영화인가?

▲ 이 포스터가 좀 더 영화의 본질에 가깝다 하겠다.






  윤종빈의 영화인가?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문제작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평단과 관객의 칭찬은 물론 흥행까지 가져간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감독. 그가 바로 윤종빈입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한국형 느와르를 한단계 끌어올린 그의 재능에 대해 칭찬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지요. 전작들에서 보여지는 윤종빈의 정체성은 리얼리즘 이었습니다. <비스티 보이즈>의 "사랑한다고 이 시발년아"라는 대사는 저에게 잊을 수 없는 각인을 심어놨었죠. '윤종빈을 주목하라!' 그런 그가 사극을 만든다고 했을 때, 거기다 민란을 다룬다고 했을 때, 현실 부조리에 항거하는 민중의 처절함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일겁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꼬집을 것인지 기대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내가 22살이여~"라는 대사는 '이 영화에서 리얼리즘을 찾지 말라!'는 선언을 보는 듯 했습니다. 사실 웨스턴 사극이란 장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빈대떡이면 어떻고, 퓨전음식이면 어떻고, 아예 피자라도 상관 없습니다. 문제는 윤종빈의 문제의식과 현실감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요리의 종류가 다르더라도 요리사가 윤종빈이라면 칼칼하고 씁쓸한 맛을 기대하게 되는데, 전혀 다른 맛을 내고 있으니까요.

  윤종빈 감독은 인터뷰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마친 순간, 매우 지쳐있다는 생각을 했다. 저를 포함한 주위 모든 사람들이 집단 우울증세를 겪는 것 같았다." 라던가 "신나고 유쾌하게 하려고 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감독의 의도에서부터 문제의식으로 부터 벗어나 호탕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던 것이죠. 결과는 철저한 장르물이었구요. 그의 의도는 아주 잘 구현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윤종빈이라는 이름에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 이게 윤종빈의 영화인가?"

▲ 감독 윤종빈

웃지말고 말해봐요.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에요?






  정두홍의 영화인가?

  철저한 장르극으로서 <군도>의 가장 큰 미덕은 액션입니다. 문제의식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인지 풍자도 없습니다. 간간히 터지는 유머는 부차적 요소일 뿐이죠. 결국 영화가 승부를 거는 점은 액션입니다. 사극과 웨스턴 등 갖가지 향신료를 섞은 특이한 냄새를 풍기지만 결국 본질은 액션 영화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정두홍 감독이 등장합니다. 영화에서 카메오로도 출연하셨고, <군도>의 무술감독을 맡으셨습니다. <군도>의 액션은 전형적인 정두홍표 활극입니다. 규모의 전투도 아니고 전략, 전술의 전투도 아닙니다. 캐릭터의 특징에 기대어 불꽃튀게 부딪히는 것. <짝패>의 활극이 <군도>에서 다시 펼쳐지는 것이죠.

  이런 활극이라면 영화가 웨스턴이나 타란티노식 연출과 비슷한 점이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미묘한 호흡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다 최후의 일기토로 카타르시스를 터뜨리는 것이 활극에 가장 어울리는 연출이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역시 윤종빈을 느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전투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느껴지는 것은 정두홍일 뿐이죠.

  심지어 영화에서 조윤(강동원)이 백성들을 노예화 시키는 수법은 <짝패>에서 장필호(이범수)가 지역 주민들을 등처먹는 방법과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이쯤되면 감독이 윤종빈인지 정두홍인지 헷갈릴 법도 합니다.





  식상하다 그러나 완성도는 뛰어나다.

  개인적으로 올해 주목한 액션영화는 <용의자>와 <우는 남자>였습니다. 스토리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을 듣고 있는 두 작품이지만 액션에 있어서는 한국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용의자>가 기존에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규모의 액션을 보여줬다면, <우는 남자>는 총기 사용에 있어서 한계와 제약을 해제했습니다.

  그러나 <군도>의 액션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전형적인 정두홍표 활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죠. 정두홍 감독이 국내 최고의 무술감독이란 점은 인정하지만 <짝패>이후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첩보영화인 <베를린>의 마지막도 갈대밭에서의 일기토로 끝낸분이다 보니, 액션에서 참신함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액션의 완성도는 뛰어납니다. 각 캐릭터마다 다른 무기를 사용하고 그 무기에 따라 무술이 달라지며, 싸우는 전략도 달라집니다. 특히 마지막에 무기의 리치차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대나무 숲으로 싸움을 끌고온 도치의 전략은 훨씬 강력한 상대인 조윤을 이기는 것이 수긍이 되게 만들어 줍니다. 이런 수준의 액션에 대한 전달력은 과거 무협영화 중흥기의 홍콩영화에서도 쉽게 찾기 어려운 높은 수준이라 하겠습니다. 액션 거장 정두홍의 손길이 느껴지는 부분이죠.

▲ 서극의 <칼>(위), 윤종빈의 <군도>(아래)

액션을 보며 서극의 <칼>이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민머리의 선악이 바뀌긴 했지만...






  양념치킨은 맛있게 뜯어 먹으면 그만이다.

  <군도>는 양념치킨이라고 생각합니다. 치킨이란 양키 음식에 한국의 양념을 더해 만든 것처럼 사극에 웨스턴을 더한 퓨전 음식인 셈이죠. 그러나 그것은 결국 양념일 뿐. 영화의 본질은 우리가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닭고기, 즉 액션영화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맛이 신선하거나 참신하지 못하다는 점이겠죠. 양념치킨도 엄연한 퓨전음식이지만 지금 그 퓨전의 신선함을 언급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맛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윤종빈은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질 정도로 엉성하진 않았습니다. 유기적이고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탄한 연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나리오에서도 나래이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진행속도를 노련하게 조절하고 있죠. 더구나 색깔이 없다는 지적도 영화의 미덕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절제했다고 본다면 혹평만 할 사항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두홍 감독이 카메오로 등장하기 이전에는 윤종빈이라는 명성에 가리워져 당췌 파악이 안되는 영화의 정체성에 갸우뚱 했지만, 그의 등장과 함께 관람의 자세를 전면적으로 재수정 했습니다. 이 영화의 목적이 민중 반란을 통한 현실 비틀기가 아니라 액션 활극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난 뒤엔 그 완성도 높은 액션과 깨알같은 유머를 통쾌하게 즐기면 그만이었습니다. 양념치킨 먹으면서 음식의 품격을 논할 필요는 없을겁니다. 덜 익었다던가 비린내가 난다거나 하지 않다면 잘 만든 양념치킨을 맛있게 먹으면 된다고 봅니다.





  한줄평

  윤종빈은 잊고 통쾌하게 즐겨라. ★★★☆




※ 강동원의 연기가 물이 올랐더군요. 풀어헤친 머리 속에서 살기어린 안광이 보는 이로 하여금 '헉' 소리가 나게 만들었습니다. 관객들 중엔 '귀신같애....'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구요. 덕분에 주인공인 하정우가 망했습니다 ㅠ,ㅠ 볼때마다 '헉! 못생겼어.'

※ 강동원의 연기도 좋았지만 조윤이라는 캐릭터도 입체적이라 맘에 듭니다. <군도>가 흥행한다면 강동원 덕이 클거라 보네요. 남자가 봐도 반할 것 같던데....

※ 관객의 입소문이 퍼지기전에 홍보 방향을 바꿔야 할거라고 봅니다. 예고편만 보면 정통사극인 것 같은데 현실은 사극이라 말하기도 애매해서;; 차라리 놈놈놈 같이 홍보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