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적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지금은 노래 본좌로 불리지만, 데뷔 초만 해도 이적은 노래 못하는 가수로 평가받았습니다. 특히나 함께 카니발을 결성했던 김동률과 많이 비교당했죠. 고등학교 시절 '이적이 낫냐, 김동률이 낫냐' 하는 논쟁은 급우는 물론 선생님도 관심을 두던 얘깃거리였습니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았죠.
"이적은 가사, 노래는 김동률."
당시 김동률은 이미 대체 불가능한 보컬로 평가받았습니다. 김동률의 노래를 김동률보다 잘 부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죠. (동일한 평가를 받는 가수로는 전인권, 박정현 등이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이적은 호소력 높은 고음을 갖고있었지만, 김동률처럼 매력적인 저음도 없었고, 음량이 풍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단단한 중저음에 익숙한 팬이라면 그가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데뷔 당시 이적의 가창력은 그저 그랬다는 게 사실이었죠.
그런 이적이 하루는 선배 가수 송창식을 만났습니다. 자신만의 발성으로 정점에 오른 대가에게 이적이 이렇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선배님은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세요?"
그러자 송창식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야, 30년을 노래만 불렀는데 어떻게 못 부를 수가 있냐?"
저는 실패자였습니다. 허랑방탕한 대학 초년을 보냈고, 전역 후에 정신 차리고 공부하려 했지만, 4년간 쓰지 않은 머리는 굴릴 때마다 삐걱대기 바빴죠. 그래도 F투성이 성적표를 미친 듯이 재수강으로 메꿔 겨우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IMF 펀치조차 회복하지 못했던 취업 시장은 말 그대로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렸죠. 졸업 연도에 취업에 실패했습니다. 1년 뒤에도 실패했습니다. 2년 뒤에도... 그리고 3년째가 되자 원서조차 통과가 안 되더군요.
저는 경계 인간이 되었습니다. 백수 기간이 길어 기업에서 받아주지도 않았고,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 청년 지원 정책에 포함되지도 않았죠. 사회라는 울타리의 경계로 내몰렸습니다. 그대로 외계인이 되어버리던가, 아니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막차를 잡아타던가. 저는 기꺼이 외계로 나갈 정도로 배짱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청년과 함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취업을 포기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저를 한심한 녀석으로 생각하시겠지만, 솔직히 취업을 포기하고나니 몹시 상쾌했습니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처지도 아니었고, 부모님 일을 돕는 등 최소한 쓸모없는 존재는 면했거든요. 공무원 시험도 이제 막 '해봐야지' 마음먹은 초짜에게는 별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죠. (어리석게도 말이죠) 그렇게 홀가분하게 내려놓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건 뭘까? 나는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몹시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그리고 어렵지 않게 제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이전부터 틈틈이 영화 글을 쓰긴 했습니다. 한때는 영화 관련 팟캐스트도 해봤죠. 그런데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저에게는 꾸준히 매달릴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시험공부에 투자했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쉬는 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짤평'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휴식의 개념이었고, 반응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짤평을 쓴다는 게 전혀 부담되지 않았죠. 매우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슬슬 지치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걸 만들어 무어에 쓰려나. 백수 시절은 이제 세월이 되어버렸는데. 이걸 만든다고 누가 돈을 주나 떡을 주나. 내가 영화 글을 쓴다고 이동진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장에 공모전에 당선될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애당초 나에게 그럴 재능이나 있나?'
그때 이적의 일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야, 30년을 노래만 불렀는데 어떻게 못 부를 수가 있냐?"
그렇습니다. 30년을 부르면 누구라도 노래 본좌가 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겠죠.
'짤평을 계속 쓴다면 30년 후에 나도 평론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계획과 피드백 없이 무작정 쏟아부은 '1만 시간'은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플레이 시간이 1만이 넘는 심해 유저를 우리는 많이 봐왔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가 글쓰기를 오락 정도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었죠. 저는 글을 더 잘 쓰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을 살폈고, 추천 수와 댓글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물론 그 노력이 매번 성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차츰차츰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의 묘미와 성장의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언제고 유유자적하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글쟁이는 돈을 못 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꿈을 펼치기 전에 먹고사니즘부터 해결해야 했습니다. 꿈도 먹여 살려야 꿈입니다. 먹지 못하는 꿈은 망상일 뿐이죠. 부모님은 늙어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어깨가 굽으시고, 어머니는 다리가 휘기 시작했죠. 30년 후를 기약하며 망상 속에서 허우적댈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날개를 접었습니다. 일단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 글은 그다음에도 쓸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공무원 시험 3년 차에 모든 자원을 몰방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3일 뒤에 아버지께서 양발에 골절상을 입으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없었죠. 이제 진짜로 먹고사니즘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대신 사장 대리가 되었습니다. 가게를 운영해야 했죠. 시험공부는 사치가 되었습니다. 영화요? 그건 사치보다 사치스러운 일이었죠. 그렇게 가게에서 서빙하는 동안 시험 기간이 지나버렸습니다. 막차는 떠나버렸고 저는 외계인이 되었습니다.
낙엽이 모두 떨어지고 나서야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막막했죠. 공무원 시험공부를 계속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교재를 보면 다 아는 내용인데 문제를 풀면 엄청 틀렸습니다. 심지어 예전에 맞췄던 문제도 다 틀렸죠. 그때는 머리가 돌이 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다 포기해버렸던 게 아닐까 싶네요.
그때 짤평과 글쓰기 모임은 좋은 위안이 되어주었습니다. 정말로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필요했죠. 뭐라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득히 먼 외계로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미래는 암담했습니다. 차라리 자대배치 받던 날이 덜 깜깜했던 것 같네요. 저는 접었던 날개에 억지로 매달린 채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새해가 밝았고, 저는 무언가 공부를 하고 있었죠. 그게 제 적성과 맞는 일도 아니었고, 저에게 글 쓸 여유를 약속한 것도 아니었지만, 일단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종종 알바를 하고, 부모님 일을 돕고, 공부를 하고...
그러던 어느 날,
"딩동.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빨리 확인해주세요."
'아... 유게에 올린 글이 또 스연게로 옮겨졌나보다. 나는 유머라고 생각했는데 ㅠ.ㅠ 유게에 남겨주면 안 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쪽지함을 열었습니다. 두꺼운 글씨로 처리된 새로 온 쪽지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고영성 작가입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체인지 그라운드'라는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PD라는 직함을 받고 페이스북과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한동안 짤평을 만들지 못했죠. (아무도 짤평 소식을 묻지는 않았지만요. 그렇다고 섭섭하진 않았고요. 그 와중에 힘내라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근데 그거 제 얘기 아니라구욧!) 그리고 이제 [픽션월드]라는 이름으로 짤평을 다시 시작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요. 그렇습니다. 이제 짤평을 돈 받고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글쓰기로 돈을 버는 건 30년 뒤에나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짤평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꿈을 이뤘습니다. 물론 이게 제 실력만의 결과는 아닙니다. 몇 번의 우연과 비극이 겹쳤고 기막히게 운이 좋았습니다. 돈을 받는다는 게 떳떳할 정도로 제 실력이 증명되었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떳떳할 수 있도록 성장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일주일에 1편이 아니라 3편, 4편, 원하는 만큼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관련 서적도 마음껏 살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만 하던 비싼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쾌감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3년 동안 성장한 것보다, 최근 3개월 사이에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날개를 접었는데, 올해 날개를 달았습니다. 더 크고 강력한 날개를요.
Written by 충달 https://www.youtube.com/channel/UCAxaLsT_FkWqr-3SfxQTjPA
'생각휴지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동진은 쇼 호스트인가? (0) | 2018.10.07 |
---|---|
호구론 (2) | 2018.05.13 |
[기담] 야구공과 할아범 (0) | 2018.03.25 |
[단편] 초식남 월드 (0) | 2018.03.19 |
[서평] 나는 막연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0) | 2018.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