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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휴지통

[서평] 나는 막연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젠가는 바둑에서도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거야. 체스도 이겼잖아?"

  "야. 바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거든?"

  "에이, 바둑도 경우의 수라는 게 있는데. 그걸 전부 계산해버리면 그만이지."

  "바둑은 경우의 수가 361 팩토리얼이라고. 네가 1초에 1씩 세도 죽을 때까지 다 세지도 못해."

  "뭐 361 팩토리얼은 무한대인가? 까짓거 계산해버리면 그만이지. 언젠가는 컴퓨터가 이길 거야."

  "아니야!"

  "맞아!"


  그리고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했다. 바둑에서도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한 것이다. 바둑은 절대 컴퓨터에게 정복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친구는 바둑 캐스터가 되었다. 그리고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신의 한 수로 1승을 거두던 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1년 뒤, 커제가 알파고에게 패하고 눈물을 흘렸을 때, 친구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 분야에서 인간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상실감. 그 비참한 심정에 공감한 순간 나 또한 씁쓸한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디지털 혁명 4.0'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한다고 한탄한다. 아직 젊은 세대였던 나에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들 그 모든 것은 인간 손에서 탄생할 것이다.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도 등장했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해 못 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내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기술을 개발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기가 만든 게 무엇인지 이해할 터였다. 어느 날 초고대 외계 문명이 등장하거나 천재 원숭이가 등장하지 않는 한 인간은 언제나 지능의 최전선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알파고가 등장했다. 바둑에서 인간을 이겼다. 놀라운 점은 알파고가 승리한 방식이다. 바둑은 체스와 다르다. 체스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그중에서 최상의 수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진정한 지능이라 보기 어렵다. 상대보다 많은 기보를 가지고 이를 빠르게 검색하면 된다. 여기에는 창의력이 필요 없다. 도토리를 분류하는 작업이라면 다람쥐 1억 마리가 사람 한 명보다 뛰어난 것과 매한가지 이치다.


  그러나 바둑에는 창의력이 필요하다. 모든 수를 고려할 수 없기에 앞 수를 상상해야 한다. 이 모든 사고가 첫수부터 끝수까지 통찰력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 여기에 상대를 기만하는 심리전까지 더해진다. 바둑이야말로 모든 게임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지능이 요구된다. 알파고는 그걸 해냈다. 인간보다 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통찰력 있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나에게 '디지털 혁명 4.0'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글을 쓴다. 바둑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에도 창의력, 상상력, 통찰력이 필요하다. 바둑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었다. 글쓰기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언젠가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수도 있다.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으로 불후의 명작을 써 내려갈 것이다. 심지어 지지치도 않고 하루 종일... 지금 당장 네오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건 아닐까? 세상 모든 컴퓨터를 부수고, 인공지능 개발을 금지해야 하는 건 아닐까?

*러다이트 운동 : 19세기에 방직기가 등장하자 노동자의 일거리를 빼앗아간다며 일어난 대규모 기계파괴운동.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 없던 시절에는 천둥 벼락을 신으로 추앙하며 두려워했다. 질병을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악마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심해의 정체를 알 수 없기에 크라켄을 상상했다. 아직도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배경으로 갖가지 코스믹 호러* 작품이 등장하고 있다.

*코스믹 호러 :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강조하는 공포물의 한 장르.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며 인간은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고, 병에 걸리는 과정을 밝혀냈으며, 심해와 우주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 우주는 미지의 공간이 아니다. 20세기 우주 SF에서 코스믹 호러가 대세였다면, 21세기 우주 SF영화 <마션>*은 화성에서 삼시 세끼를 찍었다. 두려움을 걷어내려면 이해해야 한다. 알아야 한다.

*마션의 주된 내용은 화성에서 분뇨를 이용해 감자를 재배하는 것이었다...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은 나처럼 막연하게 4차 산업혁명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구하기 쉽다. 백과사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통한 개념부터 각종 위키*에서 구할 수 있는 가십성 소식까지 정보가 넘쳐 흐른다. 이때 중요한 것이 키워드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정보의 바다를 항해할 수는 없다. 해당 분야에 대한 개괄적인 안내서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은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핵심 키워드를 담고 있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나침반 같은 책이다.

*위키 : 문서의 편집 권한이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웹사이트. 잘 알려진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이 위키에 속한다.


  마땅히 나침반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편향되지 말아야 한다. 어느 한쪽의 주장에 힘이 실리면 독자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은 이 점에 있어 놀라운 균형 감각을 보여 준다.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다가도 어느새 이면에 감춰진 비극을 들추어낸다. 독자를 들어다 놨다 하는 전개에 정신 못 차리고 몰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색의 골짜기에 빠져든다. 과연 기술이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 것인가? 그 변화의 격랑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독자를 기꺼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은 개괄적인 만큼 학문적으로 깊이있게 파고들진 않는다(학문적 지식을 원한다면 이 책을 나침반으로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를 기꺼이 항해할 수 있다). 오히려 나에게는 이 부분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딥 마인드를 설명하겠다고 학습 알고리즘을 설명한다면 내가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증강현실을 위한 GPS의 작동 원리를 소비자가 알아야 하나? 그렇다고 무작정 흥미 위주의 이야기만 담아 놓지도 않았다. 블록체인처럼 개념이 중요한 경우 기꺼이 교과서가 되는 것을 마다치 않는다. 마치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만 따로 골라 담아준 것처럼 세심한 선별이 돋보인다.


  과학/기술 관련 서적의 경우 딱딱할 거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은 촉촉하다. 가끔은 축축할 정도로 감상에 젖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촉촉한 이유가 젖어 드는 감상 때문만은 아니다.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은 언제나 인간을 향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으로부터 노동의 권리를 빼앗아 가는 공포의 존재가 되지 않도록,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한다. 지은이의 이러한 인간미가 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분야에 모두 녹아있다. 미지의 기술이 거부감 없게 다가오도록 만드는 사려 깊은 촉촉함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 윌리엄 깁슨


  나는 막연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나는 4차 산업혁명의 얼리 어답터였다. 클라우드에 내가 쓴 글을 저장하고,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업무를 본다. 글을 쓰기 위해 빅데이터 정보를 활용하고, 여가시간에는 증강현실 게임을 즐기고 있다. 미래는 이미 내 생활이 되어 있었다. 단지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은 그런 나를 깨닫게 해주었다. 미래가 이미 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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