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페미니즘은 각종 게시판을 불태웠다. 혹자는 인터넷에서만 시끄러운 '찻잔 속 태풍'이라 말한다. 내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프라인에서 메갈이나 워마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 일베가 활개 칠 시절에는 대학에 몸담고 있었다. 일베 관련 이슈를 오프라인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에서 메웜(메갈+워마드)의 악명을 접하지 못한 것은 내가 그만큼 늙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내 주변은 일베나 메웜보다는 코스피와 비트코인과 부동산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내가 메웜 이슈를 잘 안다는 것은 그만큼 철이 없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메웜 이슈에 관심이 간다. 인터넷 이슈가 현실 정치의 일기예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베가 무섭게 세를 불리던 MB 시절에는 그들이 현실 정치에 등장할 거라 생각지 않았다. 물론 싹을 자를 필요는 있었다. 일베 유저가 유권자가 되어 싹을 틔우면 그때는 늦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꾸역꾸역 성장하더니 급기야 오프라인에서 폭식 투쟁까지 벌였다. 한 후배 녀석은 총학의 시국 선언에 반대하며 일베의 주장을 옹호해 언론에 실리기도 했다. 아차 싶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싹이 발아했다. 그때부터 나는 일베라면 온, 오프를 가리지 않고 앞장서 비판했다.
다행히 일베의 사회적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각종 패악질이 언론에 실리며 패륜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극우세력이 스스로 일베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일베의 행태는 현실 정치에 등장했다. 탄핵 이후 무너져가는 보수 정당의 꼬락서니는 일베와 다름없었다. 국회의원이 일베를 권하고, 대선 후보가 여성 혐오 발언을 하며, 끝내는 인터넷 관심종자와 분간이 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적폐세력이라고는 하나 이 정도로 품격이 떨어질 줄은 몰랐다. 쪼들리면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일베는 그 본성을 미리 보여준 셈이었다.
일베가 보수의 바닥을 예보했다면, 메웜으로부터 진보의 바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예보를 보기도 전에 실제가 닥쳤다. 정의당은 메웜을 옹호하다 든든한 지지기반을 제 발로 차버렸다. 그렇게 알아서 쪼들리더니 철없는 여자애처럼 행동했다. 당 회의에서 자금 유용과 관련한 질의에 눈물을 흘리며 횡설수설했던 일화는 실로 암담했다. 대한민국 진보 정당의 본성이란 그런 수준이었다.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먼저 바닥을 보여줬지만, 나는 메웜의 이미지도 바닥에 떨어질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들의 미러링은 정도를 몰랐고, 당연히 결말도 미러링할 게 뻔했다. 그리고 패륜 사건이 터졌다. 호주에 사는 한국인 워마드 유저가 아동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녀는 아동 성 착취 동영상 제작 혐의로 호주 경찰에 체포되었다. 대개의 일베 발 패륜 사건이 관심종자의 허언극이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성추행은 거짓말이었을 공산이 크다고 한다. 그럼에도 패륜적 사고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에 메웜은 자연스럽게 패륜 집단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동안 언론과 지식인의 비호를 받아온 메웜이었다. 이제는 차마 감싸고 돌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 이번 사건은 메웜 이슈의 변곡점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꺾이고 내려갈 것이다. 뭐랄까...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멀리 보게 된다. 일베와 메웜 그 너머를 생각하게 된다.
일베나 메웜은 새로운 존재가 아니다. 일베의 호남 비하나 여성차별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합성으로 조롱하는 것은 담벼락 낙서의 인터넷 버전이다. 저속한 댓글은 술자리 음담패설을 키보드로 지껄이는 것에 불과하다. 모두 예전부터 해오던 짓이었다. 그리고 메웜은 이를 미러링했다. 미러링에 그쳤으면 신선한 슬로건이 되었겠지만, 그들은 미러링을 넘어 아예 체득해버렸다. 일베도 메웜도 과거의 연장이다. 차별과 혐오가 새로운 미디어를 수단으로 삼았을 뿐이다.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모든 차별과 혐오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정체성(Identity) 혹은 편 가르기라고 본다. 전문가들은 소외된 젊은 층이 일베를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고 말한다. 내 생각도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왜 일베가 분노 표출의 창구가 되었을까?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일베가 소외 계층의 집합소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이면 편들기가 시작된다. 소외 계층은 일베 안에서 소속감을 느낀다. 이를 강화하기 위해 구성원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증한다. 괴이한 손 모양을 찍어 올린다. 심지어 악행도 인증한다. 이를 통해 관심과 인정을 갈구한다.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악행이 도를 넘어 패륜에 이른다. 인생은 실전인데도 인정받기 위해 파행을 자처한다. (그리고 메웜은 이 모두를 열심히 따라 한다.)
왜 그럴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여 어느 편에라도 속해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속감을 위해 일베라는 악명 높은 정체성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나 국가라는 심리적 울타리 안에 놓인다. 해외라도 나가면 이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편을 가르고 갈라 심리적 울타리를 겹겹이 세운다. 문제는 이 심리적 울타리를 실감하기 위해서는 울타리 밖으로 쫓아낼 대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결국, 편 가르기는 차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편 가르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아직도 편 가르기에 매여있다. 지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 건을 살펴보자. 이슈의 핵심은 김이수 재판관의 출신이었다. 호남 홀대론을 주장하는 국민의당에 맞서, 문재인 정부는 호남 출신 재판관을 후보로 올렸다. 결국, 이를 부결한 국민의당은 호남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나는 이 건을 통해 확신했다. 21세기 촛불 정권에 이르렀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인사의 핵심은 호남 출신이라는 정체성이었다. 만민이 평등하고, 출신에 귀천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인사의 핵심은 능력이어야 한다. 인사에 정체성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각 정당의 '입장'이 얽히고설키다 보니 결국, 출신을 따지게 된다. 그 입장의 본질이 바로 편 가르기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편 가르기를 버려야 한다. 정체성 정치를 멈춰야 한다. 학벌 타파, 지연 타파, 혈연 타파. 말로만 외쳐온 강령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바로 정체성을 버리는 일이다. 명문대 출신이라서, 호남 출신이라서, 영남 출신이라서, 남자라서, 여자라서... 이런 정체성으로 대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여성 할당제나 장애인 할당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할당제에도 찬성한다. 다만,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아무 때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들먹이며 악행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은 정체성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정체성을 초월해야 한다. 정의는 정체성을 따지지 않는다. 올바른 일을,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하면 된다. 정체성은 능력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고대 출신, 서강대 출신보다 고졸 출신이 나았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희망은 장소를 따지지 않는다. 비록 추상적이지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정체성에 매이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도 벗어 던져야 한다. 나는 진보요. 나는 페미니스트요. 말은 참 좋다. 세상에 말로 척 들어서 그럴싸하지 않은 사상이나 주의가 어디 있나? 진보니, 페미니스트니 그럴싸한 칭호로 자신을 규정하기보다 진보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올바른 행동을 먼저 해야 한다. 정체성은 그 후에 타인이 부과하는 것이다. 진보니, 페미니스트니 떠들어 놓고 개똥 같은 행동을 해대면 "OO가 OO했다."는 조롱이나 받을 뿐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에서는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라는 뜻이다. 보수가 보수라서 욕을 먹는 게 아니다.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라서 욕을 먹는 게 아니다. 그들이 욕먹을 짓을 해서 욕을 먹는 것이다. 나는 자칭 'OO주의자'라는 사람을 믿지 않기로 했다. 형식적인 겸양일지언정, 그저 관심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낫다.
차별과 혐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편 가르기를 버려야 한다. 미래는 정체성 너머에 있다. 이것이 일베와 메웜의 시대를 지나며 내가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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