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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휴지통

알파고가 울린 여자

  2001년의 어느 여름날. 버스 안에서 고등학생 남녀가 설전을 벌였다.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이길걸? 체스는 이미 인공지능이 더 뛰어나잖아."
  "체스랑 바둑은 다르다고."
  "아. 물론 다르긴 다르지. 이름도 다른데."
  "야. 장난하지 말고."
  남자가 약 올리듯 어깃장을 놓자 여자가 정색하듯 받아쳤다.
  
  "알았어. 그런데, 농담 아니고, 체스나 바둑이나 다를 게 뭐 있냐? 둘 다 놓을 수 있는 경우의 수에는 한계가 있잖아."
  "체스는 경우의 수가 얼마 안 되니깐. 그래서 인공지능이 이긴 거야. 그런데 바둑은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대라고."
  "거의 무한대는 무한대가 아닌걸."
  "야. 삼백육십일 팩토리얼(361!)이라고. 이건 부르는 이름이 따로 없을 정도로 큰 숫자란 말이야."
  "그래도 무한대는 아니니깐. 삼백육십일 팩토리얼을 계산할 수 있으면 되지."
  남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자 여자는 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그 날은 안 올 거다."
  "그래도 언젠가는 오겠지."
  남자가 능글맞게 대답하자 여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따지면 네가 하는 스타크래프트도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이기겠네?"
  의외의 공격이었다. 남자에게 스타크래프트는 불가침의 대상이었다. 청춘이고, 로망이며, 종교였다. 그녀에게 바둑이 그러했듯이.
  "뭐. 그렇겠지."
  하지만 논쟁에서 질 수는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논리를 견지하기 위해 베드로처럼 스타크래프트를 부정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서진 않았다. 
  "하지만 바둑보다는 어려울걸."
  "무... 무슨 근거로?"
  카운터를 맞은 여자는 말까지 더듬었다. 공격이 제대로 먹혔다.
  "바둑은 턴 방식이잖아. 나 한번. 너 한번. 그렇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실시간이거든. 턴은 무한일 수 없지만, 시간은 무한히 쪼갤 수 있으니깐. 과연 컴퓨터가 모든 시간의 가능성을 계산할 수 있을까? 1/100초를 계산한다 해도 1/1000초에서 경우의 수가 달라지는데?"

  "야. 수천 년이나 이어온 바둑을 고작 몇 년밖에 안 된 컴퓨터 게임 따위랑 비교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여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냉철한 논리 따위는 없었다. 
  "수천 년을 이어오면 뭐 있냐? 바둑도 그냥 게임이지. 옛날 게임."
  이쯤 되면 서로 막가자는 셈이었다.
  "아무튼,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길 수 없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거야 네 바람이고. 두고 봐라. 조만간 컴퓨터가 이길걸?"
  "아니야."
  "맞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남자)와 여자는 같은 대학교에 진학했다. 나는 공과대, 여자는 이과대.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만날 일도 없었다. 1학년 축제 때 스치듯 마주친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여자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작년에 우연찮게 그녀를 다시 보았다. 직접 만난 것은 아니다. 신문 기사를 통해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바둑 전문 캐스터가 되어 있었다. 내가 평소에 바둑에 관심이 많았다면 좀 더 일찍 그녀의 근황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둑에 관심이 없었다. 세상도 바둑에 관심이 없었다. 바둑 전문 캐스터가 신문에 오르내릴 일은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내 인생에서 사라진 존재로 남을 수 있었다. 알파고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바둑 문외한인 나조차도 바둑 중계를 시청할 정도였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날, 나는 인터넷 기사에서 그녀를 보았다. 
  <이세돌 9단 승리에 끝내 오열한 바둑 캐스터>
  그 바둑 캐스터가 그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분이 복잡미묘했다. 아는 사람이 기사에 나와 반갑기도 하고, TV에 나올 정도로 잘 나가는 동창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가득 채운 감정은 통쾌함이었다. 아마 그녀가 눈앞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으리라.
  "봐봐. 내 말이 맞지?"

  내 말이 전부 맞은 것은 아니다. 알파고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는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딥 러닝을 도입하였다고 보는 게 옳다. 알파고는 경우의 수를 줄이고 결과를 더 빨리 예측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내가 생각한 방식과는 정반대라 할 수 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어쨌든 알파고 덕분에 15년 전의 논쟁은 나의 승리로 결판났다. 그게 중요하다. 아아... 알파고님, 충성충성충성!





  논쟁에 이겼다는 통쾌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사에 달린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넘 오버하네."
  흔한 악플이었다. 그녀가 관심 좀 끌어보겠다고 오버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런데 궁금증이 솟았다. 그녀는 왜 오열했을까? 나와의 논쟁이 생각나서 분한 마음에 울었나? 당연히 아니다. 나도 그녀의 인생에서는 사라진 존재일 뿐이다. 그럼 도대체 왜? 이게 캐스터의 본분도 잊고 오열할 일인가? 못해도 시말서에 심하면 징계 각인데? 

  궁금증은 시간이 지나며 잊혔다. 알파고 이슈도 식어갔다. 그렇게 바둑과 그녀는 다시 내 삶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다 얼마 전 커제와 알파고의 대결 소식을 들었다. 결과는 커제의 0:3 완패였다. 커제는 승부에 지고 나서 오열했다고 한다. 그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니 새삼 그녀가 떠올랐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은 지 1년이 지나고, 특이점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었으며, 대선 공약으로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알파고가 선사한 문화 충격을 겪고 나니, 이제는 그녀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알파고가 바둑으로 인간에게 승리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인공지능이 발달했다는 결론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창의적일 수 있다는 충격으로 확장했다. 이 충격은 인간에게서 노동의 권리를 빼앗는 공포로 이어졌다. 컨베이어 벨트와 자동화 공장이 들어섰을 때도 아직은 인간이 필요한 분야가 더 많았다. 단순 반복 작업이라면 모를까 창의력이 필요한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다. 인공지능 판사, 인공지능 의사, 인공지능 애널리스트... 블루칼라를 위협하던 기계는 이제 화이트칼라의 영역마저 침범할 능력을 갖추었다. 심지어 예술의 영역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딥 마인드가 그린 미술 작품이 경매에서 무려 5만 달러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학문 연구 분야도 멀지 않았다. 인간이 풀지 못한 수학 난제를 인공지능이 먼저 해결할지도 모른다. 이제 인간의 몫으로 남을 직업은 없는 셈이다. 누군가 매춘은 남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럴 리가. 섹서로이드는 인공지능 SF의 단골 소재다. 결국, 인간은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니, 인간이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간이 노력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더 훌륭한 결과를 인공지능이 내놓을 것이다. 특이점이 온다면 인간은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도 못할 것이다. 

  나에게 이런 세상은 디스토피아다. 내 꿈은 글 쓰는 사람이다. 내가 쓴 글이 천만 부쯤 팔려나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앞으로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 작가가 등장할 거란다. 이 얼마나 암담한 일인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종족의 한계를 동반한 재능의 차이를 직면할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 작가는 게으르지도 않다. 불후의 명작을 하루에도 수십 권씩 찍어낼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필력은 나날이 발전한다. 아아... 4차 산업혁명은 틀림없이 내 꿈을 즈려밟을 것이다. 

  다행히도 글쓰기 영역에서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벌어진 일이 되었다. 그녀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프로 바둑 기사를 희망했다고 한다. 학업을 위해 바둑을 포기했고 몹시 안타까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록 그녀가 승부사의 길이 아니라 캐스터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래도 그녀는 다시 바둑인이 되었다. 그런데 알파고가 등장하여 바둑판을 접수했다. 앞으로 인간이 바둑에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을까? 알파고는 그렇게 인간에게서 바둑을 빼앗았다. 바둑을 빼앗긴 바둑인이 느꼈을 참담함이란 얼마나 깊고 쓰라렸을까...

  그런 와중에 이세돌이 승리했다. 비록 전체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지만, 전무후무한 인간 측 1승을 챙겼다. 이 승리가 희망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나 바둑을 빼앗긴 바둑인에게는 충분한 위로가 되었으리라. 

  나는 그녀의 눈물이 오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빼앗긴 들판에 피어난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며 그녀는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심정에 공감한다. 그녀의 눈물을 이해한다. 










※ 그래도 그녀를 직접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겠지요. "봐봐. 내 말이 맞지?"

※ 만약 "알파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여 인간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는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1승을 거둔다면? 분명 저라도 펑펑 울 것 같습니다. 

※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인간이 이겼으면 좋겠네요. 

※ [모난 조각] 15주차 주제 "4차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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