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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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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비결 사랑에도 갑을이 존재한다. 더 좋아하는 쪽이 을이다. 당연하게도.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 2학년 때였다. 신입생으로 들어온 그녀는 내가 감히 말을 걸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했다. 가뜩이나 남자만 득시글한 학내에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여왕이 되었다. 남학생들은 벌떼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처참하게 차인 건 신입생 대표였다. 그는 5월 대동제 때 그녀에게 공개 고백을 했다. 전교생이 보는 노천극장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사랑합니다.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받아주려는 듯 침착한 걸음걸이로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마음은 고맙지만, 받아들일 수 없어요."라며 교과서 같은 대답으로 거절하고 다시 침착한 걸음걸..
돗대를 피우고, 칵테일을 마시고, 반지를 뺐다. 마지막으로 일회용 라이터를 돈 주고 산 적이 언제던가? 흡연자의 방에는 일회용 라이터가 굴러다닌다. 책상 서랍, 옷장, 책꽂이, 냉장고? 처치 곤란이다. 그래서 일회용 라이터를 사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런 날도 있는 법이다. 주머니를 뒤져봐도 라이터가 없다. 백팩을 내려놓고 뒤져봐도 라이터가 없다. 혹시나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불 정도 빌려주는데 인색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 점심시간을 갓 넘긴 오후의 도로에는 행인조차 보이지 않았다. 새까만 아스팔트 위로 어지러이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담배가 땡기는 풍경이었다. 걸어온 길을 돌아갔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상쾌한 공기가 귀밑부터 뒷목을 감싸 안았다. 역시 에어컨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미사토 당신은 언제나 옳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