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은 누굴까? 아마 많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을 꼽을 것이다. 냉전 시대 이후 세계에 유일하게 남은 초강대국이 바로 미국이다. (중국은 아직 멀었다) 일단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는데, 2위부터 27위까지 국방비를 더해도 미국보다 못하다. 심지어 그중 25개 국가가 미국의 우방국이다. 여기에 경제, 예술, 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국은 세계의 대장이고, 그 미국의 대장이 바로 미국 대통령이다. 한 개인으로서 세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인 셈이다.
그런 미국 대통령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러한 발상은 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드라마 <지정생존자>는 테러로 대통령을 포함한 의회와 내각이 전부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를 그려냈다. 영화 <에어 포스 원>은 미국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가 납치당하는 상황을 다뤘다. 비슷하게 <아이언맨 3>에서도 미국 대통령이 납치당하며 행방불명 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이 사라졌을 때 일어날 혼돈... 이야기꾼에게 이보다 매력적인 소재가 또 있을까?
소설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그 매력적인 발상을 전면에 배치했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자취를 감추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상황을 현실적이면서 긴박감 넘치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특히 매력적인 부분은 그 실종을 대통령이 스스로 의도했다는 점이다. 대통령 실종을 다룬 여타 작품들이 혼돈을 중심에 두었다면,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실종 그 자체를 전략의 한 수로 두고 의회, 여론, 테러 세력과 치열하게 수 싸움하는 대통령과 보좌진의 모습을 묘사한다. 왜 대통령은 스스로 실종당해야 했을까? 무엇을 노리고 혼돈을 자처했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전말은 무엇이었을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내가 미국 최고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전쟁의 한 가운데 놓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대통령이 사라졌다>가 이토록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저자의 독특한 이력 덕분이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이 공동 저술했는데, 한 사람은 제임스 패터슨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빌 클린턴이다. 맞다. 미국의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이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이끌었으며, 미국 최고 호황기를 이뤄낸 그 사람이다. 존 F. 케네디 이후 미국 국민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대통령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심지어 그 스캔들이 있었음에도!)
빌 클린턴의 위엄이 워낙 대단해서, 제임스 패터슨을 대필 작가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임스 패터슨도 전직 대통령 못지않게 대단한 사람이다. 단 한 줄이면 그의 위엄을 표현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작가 중 가장 책을 많이 파는 작가." 포브스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셀러브리티 수익 상위 3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호날두나 메시보다도 많이 벌었고, 작가로서 유일하게 10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여러 작가와 협업하며 다수의 작품을 내고 있는데, 내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괴물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항에서 시간이 남으면 제일 먼저 손이 가는 작가로 이름이 높다.
전직 대통령과 괴물 베스트셀러 작가. 이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덕분에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독자를 사로잡는 확실한 강점 2가지를 얻게 되었다.
1) 현실감
미국 대통령은 미디어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일거수 일투족이 철저한 보안 속에 가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어설프게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 현실 감각 떨어지는 이상한 묘사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이 점에서 오히려 확실한 강점을 보여준다. 저자가 무려 전직 대통령이지 않은가.
백악관에서 아침을 먹고 신문을 보는 일상적인 모습부터, 부통령을 비롯한 내각 관료를 이끄는 모습, 여기에 야당 의원과의 피 말리는 신경전까지.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미국 정치의 적나라한 민낯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미국 정치판을 다룬 드라마 투톱으로 <웨스트윙>과 <하우스 오브 카드>가 자주 거론되는데, 빌 클린턴은 실제 모습을 더 잘 묘사한 쪽이 <하우스 오브 카드>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 저자의 시선이 녹아들었기 때문일까?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소설 속 정치판을 보고 있으면 절로 <하우스 오브 카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2)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전개
빌 클린턴이 소설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면, 제임스 패터슨은 그 위에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흥미진진한 전개를 쌓아 올렸다. 앞서 말했지만, 그의 소설은 미국인들이 공항에서 가장 즐겨 찾는 작품이다. 확실한 재미가 없다면 이러한 칭호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얄팍하게 재미만 좇았다면 비행기를 애용하는 성인 층에게 어필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그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현실 정치와 국제 정세를 녹여내며 적당한 무게감을 선사하면서도, 이야기를 지나치게 꼬지 않고 빠르게 전개하는 속도감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픽션의 제1 덕목은 재미라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일찌감치 합격 도장을 챙겨갔다.
빠른 속도감을 보여준다고 했지만, 그 와중에도 강약을 조절하며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한다. 그리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플롯 구성이 일품이다. 제임스 패터슨은 확실히 잘 팔리는 작가이자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어떻게 해야 더 궁금하게, 더 흥미진진하게, 더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낼 지 알고 있다. 조금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다빈치 코드> 이후 오랜만에 소설을 보며 '재밌다'라는 쾌감을 짜릿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한 마디로 '박진감이 넘친다.' 빌 클린턴이 불어넣은 현실감 위에 제임스 패터슨의 필력이 흥미진진함을 더한다. 현실 정치의 난잡함과 이상적인 대통령의 모습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면서 소설의 제일 중요한 덕목인 '재미'를 확실하게 선사한다.
그동안 소설에 별로 흥미를 갖지 못했거나 오랜만에 소설의 원초적 재미를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대통령이 사라졌다>를 적극 추천한다. 이미 소설 장르에 뼈가 굵은 마니아라면, 타고난 이야기꾼의 썰 푸는 재주를 분석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소설은 재밌다. 그리고 재밌어야 한다. 그 근본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꼭 <대통령이 사라졌다>를 읽어보길 바란다.
※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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