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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 인생의 '데이원'은 이제 시작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불린다. 그가 독재자 같은 성격과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뱉어대는 인성을 가져서 그런 게 아니다. 그가 설립한 아마존이라는 기업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서운 점은 이미 세계 시가 총액 순위 5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거대해졌음에도 성장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는 해당 산업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삶 그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아가 인류의 꿈처럼 여겨지는 인공지능과 우주개발 분야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아마존은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이 되었을까? 제프 베조스는 매년 주주들에게 연간 서한을 보내는데, 이 편지에는 아마존을 운영하는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즉, 자신의 성공 비결을 매년 편지를 통해 공개하는 셈이다. 스티브 앤더슨의 <베조스 레터>는 그 편지를 분석하여 아마존의 성공 원칙 14가지를 정리했다. 


1. 성공적인 실패를 장려하라

2. 큰 아이디어에 베팅하라

3. 역동적인 발명과 혁신을 실행하라

4. 고객에게 집착하라

5. 장기적 사고를 적용하라

6. 플라이휠을 이해하라

7. 의사결정 속도를 높여라

8.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라

9. 기술로 시간을 단축하라

10. 주인의식을 고취하라

11. 기업문화를 유지하라

12. 높은 기준에 집중하라

13. 중요한 것을 측정하고, 측정한 것을 의심하고, 직감을 신뢰하라

14. 항상 '데이원'이라고 믿어라


14가지 원칙의 가장 놀라운 점은 따로 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각의 원칙은 그 자체로도 훌륭히 작동하지만, 동시에 다른 원칙과 연결되며 그 의미를 더욱 강화한다. 


예를 들어 7번 원칙 '의사결정 속도를 높여라'를 살펴보자. 아마존은 2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유형 1 결정'은 큰 결과를 초래하여 돌이키기 어려운 중대한 결정이다. '유형 2 결정'은 변경 가능하고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이다. 아마존은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직원들에게 '유형 2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한다. 그 결과는 엄청난 의사결정 속도로 돌아온다.


왜 그런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아마존과 정반대의 조직을 떠올려보면 된다. 바로 대한민국 군대다. 군대에서는 정말 모든 것을 허락받아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대처하는 게 아니라 본부에 보고해야 한다. 본부는 다시 상급 부대에 연락하고 상급부대는 더 상급 부대에 연락한다. 최종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사단장(별 2개)뿐이다. 이등병부터 사단장까지 그 기나긴 보고체계를 지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낭비될까? 그럼에도 군대는 이러한 의사결정 체계를 바꿀 생각이 없다. 누군가가 실패하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이등병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마존은 의사결정에 자율권을 부여할 수 있는 걸까? 이것은 1번 원칙 '성공적인 실패를 장려하라'와 이어진다. 아마존은 실패를 장려한다. 정확히는 실패에 투자한다. 의도적으로 실패할 기회를 만든다. 그래서 예산에 '실패' 항목을 배정한다. 그 결과는 큰 성공으로 돌아온다. 어떻게? 우선 실패는 실패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몇 번의 큰 성공은 효과가 없었던 수십 번의 실패를 보상한다. 실제로 아마존이 실패했던 지숍(zShop), 파이어폰은 훗날 마켓플레이스와 에코, 알렉사로 다시 태어나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러한 철학 아래에서 직원들은 더 많은 시도와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괜찮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짓이나 벌여도 된다는 건 아니다) 즉, 1번 원칙 '성공적인 실패를 장려하라'는 2번 '큰 아이디어에 배팅하라'와 3번 '역동적인 발명과 혁신을 실행하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얻은 기술력은 9번 '기술로 시간을 단축하라'를 성공적으로 끌어낸다. 발명과 혁신을 실행하라는 원칙은 13번 '중요한 것을 측정하고, 측정한 것을 의심하고, 직감을 신뢰하라'라는 원칙으로 이어진다. 정량적 사고, 정성적 사고, A/B 테스트 등 아마존은 창조와 개선을 장려하는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에서 시작한 자율권은 10번 '주인의식을 고취하라'로 이어진다. 아마존 상담원들은 고객과의 통화나 채팅 중에 회사의 지침이나 규정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상급자의 확인이나 승인 없이 자신이 생각해낸 모든 대안을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즉,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최고의 성과를 위해 움직인다. 많은 경영자가 직원이 주인처럼 행동하길 바라지만, 아마존처럼 자율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주인의식이 자리 잡으면 4번 '고객에게 집착하라'와 5번 '장기적 사고를 적용하라'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주인은 세입자와는 다르다. 진심으로 고객에게 집착하고,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적인 목표 달성을 생각하려면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사고가 가능하면 플라이휠(선순환 구조)을 이해할 토대가 마련된다. 


이러한 아마존의 기업문화에 반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제프 베조스는 이를 '프록시'라고 부른다. 프록시란 자신의 행동이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핑곗거리를 의미한다. 회사 방침이나 절차상 어려움 혹은 상사의 명령을 핑계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직원이 있다면, 이는 프록시에 저항하지 않는 직원인 셈이다. 


'프록시에 저항하라'라는 말은 '고객을 위해 옳은 일을 할 때는 정책과 절차에서 벗어나도 괜찮다'라는 뜻이다. 거대한 기업일수록 정책과 절차에 집착한다. 하지만 아마존은 마치 스타트업처럼 정책과 절차를 기꺼이 무시하고 고객에게 집착한다. 마치 스타트업처럼. 이것이 앞서 언급한 모든 원칙을 하나로 모으는 아마존의 핵심 철학, 14번 '항상 데이원이라고 믿어라.'이다.


항상 그랬듯이 1997년 베조스 레터 사본을 첨부합니다. 언제나 첫날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겠습니다.

- 제프 베조스

제프 베조스는 연간 주주 서한 말미에 언제나 최초의 편지를 첨부한다. 그렇게 첫날의 마음가짐을 항상 되새긴다. 반대로 첫날의 마음가짐을 잃고 데이투에 돌입하면 기다리는 것은 퇴보와 쇠락뿐이다. 비즈니스는 성장하거나 죽어가거나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데이투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데이원이라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베조스 레터>를 읽고 나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아직 데이원이 오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에게 많은 자율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나는 그 자율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베조스 레터>를 읽기 전까지는 이유가 아니라 핑계만 있었다. 들어오는 일 쳐내느라 여유가 없고, 근무시간 꽉꽉 채워가며 열심히 일했고... 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해 '시간만 낭비하는 노력'을 가리킬 뿐이다.


진짜 이유는 내가 스스로 자율권을 거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도 시키는 것만 하는 주입식 교육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어보지 않아도 될 일에도 '이거 해도 돼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베조스 레터>를 읽고나니 이 행동이 더할 나위 없이 멍청해 보였다. 누가 봐도 '유형 2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아무리 많은 자율권을 부여해도, 직원이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내가 딱 그런 상태였다.


<OKR>을 읽으면서 진짜 목표를 바라보는 눈과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베조스 레터>를 통해 목표에 다가갈 때 필요한 태도와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누가 시키기 전에, 고객이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실험하자. 실패하면 되돌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주체적으로 인생의 플라이휠을 굴려야 한다. 그렇다. 내 인생의 데이원은 이제 시작이다. 이게 어디까지 굴러갈 수 있을지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