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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내 안의 너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시작을 따지자면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였을 거다. 집 대문에 새로 오픈한 피자집 전단이 붙어있었다. 오픈 기념. 피자를 시키면 치킨이 공짜. 나는 뭐에 홀렸었나 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네. 만 팔천 원입니다. 아뿔싸. 돈이 없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아버지 비자금에서 한 장. 내 비상금에서 한 장. 그렇게 혼자서 피자 한 판과 치킨 한 마리를 꿀꺽했다. 지독한 장염에 걸렸다. 초등 6년 개근상에 빛나던 내가 생애 처음으로 결석을 했다. 아픔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분이 멀다고 설사가 나오느라 문밖으로 다섯 걸음도 나설 수 없었다.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변기 위로 달려가 뿌지지지쪼로로록퍝촵 기묘한 관악기를 연주해야 했다. 나중에는 자포자기하고 계속..
[단편] 최후의 익스퍼디션 "동무들! 힘찬 아침!" 사령관 유리 밀렌첸코가 요란스럽게 등장했다. 오늘도 붉은색 싸구려 비닐 망토를 둘렀다. 평소라면 슈퍼맨처럼 주먹을 뻗은 채 ISS(국제우주정거장)를 유영했으리라. 그런데 오늘은 망토로 몸을 꽁꽁 가린 것이 무언가 지랄 맞은 짓을 하려는 모양이다. "내가 누군지 궁금한가? 묻는다면 대답해줘야겠지?" 아무도 말 걸지 않았건만, 신이 나서 저러고 있다. 부사령관 알렉산드라 자리야노바는 그런 유리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령관님. 지난주에 본부로부터 경고받으신 거 잊지 않으셨죠? 명백한 성희롱이에요. 또 망토만 입고 돌아다니시면 강제로 송환시킬 겁니다." 유리가 반색했다. "정말? 또 그러면 지구로 보내주는 거야?" "그럼요. 돌아가서 감옥에서 푹 썩으시면 되죠. 덜렁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