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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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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야구공과 할아범 남자아이는 시절에 따라 즐기는 스포츠가 달라진다. 고등학교 때는 농구를 즐겨했고, 중학교 때는 축구만 했다. 초등학교 때 우리의 스포츠는 야구였다. 이런 변화가 벌어진 이유는 아마도 아이들의 몸집과 연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야구를 하곤 했던 공터를 어제 잠시 방문했는데, 이렇게 좁은 데서 어떻게 1, 2, 3루를 나누고 배트를 휘둘렀는지 놀랄 지경이었다. 초등학교 내내 야구를 했지만, 딱 반년 정도 야구를 못 한 적이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팔목이 욱신거리곤 한다. 어른들은 우리가 공터에서 야구 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게, 홈런이라도 날렸다가는 야구공이 주변 담장을 넘어가거나 주차된 자동차를 뚜드려패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어른들은 크게 뭐라 하..
[단편] [기담] 귀(鬼) 감나무 베던 날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다음 날. 엄마는 매일 화장했다. 손님 받지 않거나 밖에 나가지 않아도 화장했다. 그런데 감나무 베던 날에는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안 빗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하얀 속적삼에 속곳을 입고 종일 벽만 쳐다봤다. 배고파 엄마한테 밥 달라 했는데 엄마는 암말도 안 했다. 심심하고 배도 고파 광수네 놀러 갔다. 광수 애미가 광수 없다 그랬다. 댓돌에 광수가 자랑하는 고무신 있는데 집에 없다 그랬다. 그래서 돌아 나오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철쭉 따 먹고 있었는데 영감님이 지팡이로 때렸다. 나는 영감님 싫다. 영감님 맨날 나만 보면 혼냈다. 다른 애들은 안 혼냈다. 정가리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정가리 하라 그랬다. 나는 엄마 말도 잘 듣고, 이도 꼬박꼬박..
[단편] [기담] 정전 버스 막차는 전혀 한산하지 않았다. 다들 뭐가 그리 다망한지 빈자리 하나 없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박 차장이 물고 늘어졌다. 이 대리 한 잔만 하고 가자. 딱 맥주 한 잔만. 외면하기 어려웠다. 정 과장은 아내가 만삭이고, 나머지 사원은 전부 여자다. 그렇다고 박 차장이 부장님께 엉겨 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만한 게 나다. 그래도 오늘은 일찍 들어갔어야 했다. 왜 일찍 가야 하는데? 박 차장이 다그쳤을 때 나는 이유를 기억하지 못했다. 뺑기 부리지 말고 가자. 그렇게 딱 한 잔만 하자던 술자리는 3,000cc 세 피처를 채우고야 말았다. 더 주문하려는 박 차장을 겨우 말려낸 구실이 바로 이 버스 막차였다.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동네에 버스가 당도했다. 씹던 껌..
[단편][기담] 로드킬 그날은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7월 한창이었습니다. 이런 날에는 주간보다는 야간에 일하는 게 훨씬 쏠쏠합니다. 야밤에 더위를 피해 한강 둔치를 찾는 손님이 많거든요. 목동이나 연희동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한강 가는 손님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한강에 가면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은 널렸고요. 네. 저는 택시기사입니다. 이제 막 야간 영업이 피크를 찍는 11시 무렵이었습니다. 느닷없이 휴대전화가 의외의 이름을 얼굴에 띄우고는 "빼애애액" 신경질을 냈습니다. 이경필. 고향에 사는 불알친구입니다. 경필이와 연락 안 한 지 몇 년은 되었습니다. 마지막 연락은 고등학교 은사께서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친구란 경조사 때나 연락하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도 경조사라도 불러주는 친구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