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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휴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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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에 당첨됐다 "로또에 당첨되고 싶으세요? 로또를 사세요." 그래서 나는 매주 로또를 산다. 딱 만 원어치. 한 달에 4만 원. 알바로 버는 돈이 45만 원 이니깐 대충 수익의 10%를 쏟아붓고 있다. 엄청난 투자잖아? 그러나 워낙 기대값이 낮은 투자종목이다 보니 수익률은 처참했다. 석 달 간 벌어들인 돈은 0.5만 원. 수익률은 -96%. 당연한 결과려나. 그래도 당첨된다면 말 그대로 대박은 대박이니까. 어차피 매주 허공에 담배 연기로 만 원씩 날려 먹는데, 기부하는 셈 치고 주당 만 원 쓰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로또는 나눔이라잖나. 저번 주 짤평 작품은 이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민감하고 핫한 정치 소재로 만든 영화다. 오, 이건 봐야 해! 다행히 추천 수도 제일 많아! 앗싸 보러 가자!..
퀴어와 케이크 퀴어 담론을 접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떤 대상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게 어떤 종류의 케이크를 좋아하는 것과 다를 게 있을까요? 제 여자친구는 당근 케이크와 고구마 케이크를 좋아합니다. 저는 초콜릿 스펀지나 티라미수를 좋아하죠.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배스킨라빈스는 아이스크림을 케이크라고 우기고 있고, 종종 푸딩인지 케이크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케이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죠. 성적 지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여자가 좋고, 누구는 남자가 좋고, 누구는 2D가 좋을 수도 있죠.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언젠가 성전환 수술을 하고 싶은 트렌스젠더가 여자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동성애자일까요? 이성애자일까요? 그러나 이성애자가..
헤어진 다음 날 600년간 시라쿠사를 지켜온 에우리알로스 요새가 무너지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였다.그러나 에우리알로스의 옛터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일요일 아침. 맑은 햇살이 베란다 통유리를 지나 거실을 푸근히 감싸 안았다. 동장군도 빨간 날에는 쉬는 걸까? 지난 밤 창문을 두드리던 매서운 바람도 자취를 감추었다. 뽀글머리 파마를 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소파를 등지고 바닥에 앉았다. 다리를 덮은 담요가 보일러의 온기를 가지런히 모아주었고, 통유리를 건너온 햇살이 아주머니의 등을 따스히 보듬었다. 그 상태로 귤을 까먹으며 을 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사치이자 행복이었다. "와장창." 사치는 죄악이라더니, 징벌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아주머니는 황급히 소리 난 곳으로 달려갔다. ..
[단편] 최후의 익스퍼디션 "동무들! 힘찬 아침!" 사령관 유리 밀렌첸코가 요란스럽게 등장했다. 오늘도 붉은색 싸구려 비닐 망토를 둘렀다. 평소라면 슈퍼맨처럼 주먹을 뻗은 채 ISS(국제우주정거장)를 유영했으리라. 그런데 오늘은 망토로 몸을 꽁꽁 가린 것이 무언가 지랄 맞은 짓을 하려는 모양이다. "내가 누군지 궁금한가? 묻는다면 대답해줘야겠지?" 아무도 말 걸지 않았건만, 신이 나서 저러고 있다. 부사령관 알렉산드라 자리야노바는 그런 유리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령관님. 지난주에 본부로부터 경고받으신 거 잊지 않으셨죠? 명백한 성희롱이에요. 또 망토만 입고 돌아다니시면 강제로 송환시킬 겁니다." 유리가 반색했다. "정말? 또 그러면 지구로 보내주는 거야?" "그럼요. 돌아가서 감옥에서 푹 썩으시면 되죠. 덜렁거리는..
촛불은 시위 현장의 이적 행위인가? https://www.facebook.com/measophia/posts/1024403044334768 오늘 이런 글을 보았다. 참담한 글이다. 상대의 폭력에 분개하면서, 자신의 폭력을 부추기고 정당화한다. 100만의 촛불 집회자를 길들여진 모범생으로 폄훼한다. 심지어 폭력의 흔적을 예술작품이라 칭송한다. 도대체 얼마나 고고하고 잘난 사람이란 말인가. 이야말로 진보선민주의, 흔히 말하는 깨시민이 아니겠는가. 광화문 거리에 참석한 얌전하게 길들여진 모범생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다. 저치가 검을 들라고 하니 나는 분개하는 마음으로 펜을 들겠다. (펜이 검보다 강함) (사실 키보드) 오늘날의 폭력 시위는 전복의 위력이 없다. 죽창으로 혁명이 가능한 시절은 조선 시대까지다. 지금 죽창 들고 나서..
다시 광장으로 불면증과의 친분은 올해로 7년째를 맞는다. 규칙적인 식습관, 꾸준한 운동, 열정을 쏟은 공부. 하루가 고단하면 불면증은 물러간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불면증은 불쑥 내 우뇌를 방문한다. 지난 밤에도 오랜만에 찾아온 불면증과 씨름해야 했다. 졸려라. 졸려라. 제발 졸려라. 아무리 애원해도 불면증 님은 우뇌 깊숙한 곳에 앉아서는 연거푸 잡생각을 들이키셨다. 불면증이 잡생각에 취해갈수록 내 정신은 말똥말똥해졌다. 새벽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야속하게도 창문 밖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왔다. 그제서야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불면증은 볼 장 다 봤다며 약 올리듯 사라져버렸다. 시계는 다섯 시 삼십 분을 가리켰다. 무거운 눈꺼풀이 무너지듯 닫혔다. 지금 자면 못 일어날 텐데. 딱 5분만 눈을..
함께 나갑시다 제가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취업준비생'입니다. 저는 취업을 못 하고 아르바이트나 전전하고 있지만, 어디서도 자신을 취업준비생이라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저 백수라고 말합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백수를 취업준비생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백수 입장에서야 놈팽이 취급당하는 말보다는 학생처럼 들리는 단어가 듣기 좋겠죠. 그러나 본질은 백수입니다. 취업준비생은 말장난일 뿐이죠. 흔한 말로 포장이고, 유식한 소리로 프레이밍(framing)이라고 합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뉴스 미디어는 선택과 강조, 무시를 통해 사실을 변형합니다. 심각한 일도 별것 아닌 일로 만들고, 잘못한 일도 잘한 일로 만들죠. 끝내 본질마저 왜곡합니다. 언론이 권력에 장악당한..
똑똑똑 똑똑똑. "총무님." 총무. 그렇다. 나는 총무다. 고시원 총무. 시급은 1,920원, 월 45만 원. 최저시급의 사각지대, 그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급여를 자랑한다. 그나마 이것도 형편이 나아진 결과다. 이전 사장이 있었을 때는 휴일도 없었다. 명목상 한 달에 두 번의 휴일이 있긴 했다. 그러나 주간 총무가 쉴 때는 야간 총무가, 야간 총무가 쉴 때는 주간 총무가 대타를 서야 했다. 결국, 휴일은 없는 셈이었다. 그러다 한 달 전쯤 고시원이 팔렸다. 새 사장은 젊은 사람이었다. 30대 중반. 나하고 나이 차이도 다섯 살밖에 안 되었다. 나이가 젊은 만큼 생각도 젊었다. "아...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기본적인 직원 복지는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 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