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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읽기만 하면 반드시 똑똑해지는 글.TXT

총기 관련 사망사고는 미국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다. 이와 관련해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라는 법안이 논란에 올랐다. 이 법에 따르면 사람은 폭력적 위협 앞에서 물러설 책임이 없다. 그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무력 사용이 허용된다. 정당방위에 관한 법안인 셈이다.

 

이 법안을 두고 찬반 논쟁이 팽팽히 맞섰다.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법을 적용할 때 발생하는 인종차별을 지적하고, 총을 쏜 사람이 정당방위를 주장하기가 너무 쉽다고 우려를 표한다. 반면 지지자들은 이 법이 범죄자에 맞서 범죄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폭력적 범죄를 전반적으로 저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반박한다.

 

과연 이 중에 어느 쪽 의견이 사실일까? 양측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로이터 통신이 다음과 같은 그래프를 발표했다. 이 그래프는 22년 동안 플로리다주에서 발생한 총기 사망 건수를 보여준다.

 

이 그래프를 보면 2005년 제정한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이 사망 건수를 줄여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 벌어진 상황이 아니다. 위 그래프에 세로축을 보라. 거꾸로 돼 있다! 0이 아래가 아니라 맨 위에 가 있다. 이 그래프를 일반적인 형태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플로리다주에서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이 제정된 뒤 총기 사망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그런데 왜 로이터 통신은 그래프를 뒤집어서 표현했을까? 그래픽 디자이너는 얼마 뒤 "나는 죽음을 비관적인 형태로(반전된 상태로) 보여주는 걸 선호한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아... 그러셨어요;;;) 디자이너의 말이 진실이고, 정치적인 개입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 그래프가 용납되는 건 아니다. 아주 형편없이 디자인되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그래프를 '장난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래프 장난질이 미국에서만 있는 일일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오히려 더 많이 일어나는 듯하다. (이런 생각 또한 국내 예시를 자주 봐서 생기는 가용성 편향일 수도 있다) 언론은 물론이고 정부 발표까지 툭하면 그래프 장난질이 끼어든다.

 

위는 북한의 CVID(완전한, 비가역적) 비핵화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다. 질문 내용도 같고, 퍼센트도 같다. 그런데 그림만 다르다. 위쪽은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에서 발표한 원본 그래프다. 아래는 언론사 머니투데이가 이 그래프를 인용하면서 장난질 친 결과다. 그림에서 숫자를 지우면 마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비등비등한 것처럼 보인다.

 

위 사진은 2018년에 정부가 발표한 그래프다. 무엇이 문제인지 보이는가? 가로 선을 하나 그으면 아주 명확하게 문제가 드러난다. (세상에 2.8보다 2.1이 높은 그래프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다음은 2019년 설을 앞두고 정부가 발표한 자료집에 실린 그래프이다. 이 또한 문제가 많다.

 

그림만 보면 한국의 성장률이 프랑스의 2배보다 커 보인다. 하지만 2.7은 1.6의 2배인 3.2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이 두 그래프도 마찬가지다. 실제 증가한 폭에 비해 훨씬 과장되게 그래프를 그렸다.

 

사람들은 그래프가 들어가면 일단 신뢰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실제 실험으로도 밝혀졌는데, 같은 내용의 발표를 했을 때 그래프와 같은 통계자료를 활용한 경우 발표자를 더 전문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발표 내용을 더 신뢰한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가 있다.

 

20세기 후반 각종 워드 프로세서가 차트 기능을 추가하면서 데이터 시각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데이터만 있으면 뚝딱하고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 확실히 그래프는 편하다. 한눈에 경향을 파악하기 쉽고, 요점을 제대로 포착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교묘한 속임수를 포함하기 쉽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의 타고난 경향은 그러한 디테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일단 그래프가 포함되면 왠지 더 믿음직스럽고, 맞는 말처럼 느껴진다. 과연 이런 함정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책 <똑똑하게 생존하기>에서는 이러한 속임수에 빠지지 않고 그래프를 제대로 보는 똑똑한 방법에 대하여 알려준다. 그중 장난질을 간파하는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 몇 가지를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도 속임수에 넘어갈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진짜 읽는 것만으로도 지혜롭고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더라)

 

1) 악의 축을 확인하라

 

다음 그래프는 '사람들이 대상을 신뢰하는 정도'를 두고 퀘벡과 캐나다 나머지 지역을 비교한 그래프이다. 이 그래프만 보면 퀘벡 사람들의 신뢰도는 다른 곳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세로축을 자세히 봐 보자. 그래프마다 들쭉날쭉하다. 일반 대중에 대한 신뢰도를 보면 그래프가 35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러면 36.44%라는 수치는 바닥을 기어 다닐 수밖에 없다.

 

수치를 따라 옳게 그린 그래프는 이런 모양이 된다. 보다시피 퀘벡 사람들의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낮기는 하지만, 바닥을 기어 다닐 정도로 형편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온 걸까? 바로 세로축이다. 2번째 그래프는 세로축이 0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장난질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앞으로 막대그래프를 본다면 반드시 세로축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라. 특히 0까지 포함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세로축이 아니라 악의 축일 확률이 높다.

 

반면 선 그래프의 경우에는 세로축에 0이 포함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속임수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

 

 

두 그래프 모두 1880~2019년까지 지구의 연평균 기온을 나타냈다. 그런데 왜 하나는 온도 변화가 거의 없어 보이고, 다른 하나는 상승하는 것처럼 나왔을까? 첫 번째 그래프가 세로축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기 때문이다. 범위가 너무 넓어 변화 추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그래프는 분명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을 드러내진 않는다. 오히려 진실을 가리고 독자를 기만하고 있다. 이러한 장난질에 속고 싶지 않다면 세로축이 제대로 되었는지 악의 축은 아닌지 꼭 구분해야 한다.

 

2) 비례 잉크의 원칙

 

위 그림은 ESPN이 웨스트 브로미치와 아스널의 축구 경기 결과를 요약한 그래프이다. 웨스트 브로미치는 6개의 슛을 기록해 그중 하나가 골로 연결됐고, 아스널은 4개의 슛을 기록해 그중 2개가 골로 연결됐다.

 

물론 웨스트 브로미치의 골 결정력이 형편없는 건 사실이지만, 이 그래프는 그 사실을 심하게 과장했다. 왜냐하면 옅은 색과 진한 색의 비율이 6:1이 아니라 36:1이기 때문이다. 그림만 보면 웨스트 브로미치의 골 결정력이 1/36처럼 보인다. 같은 억울함은 아스널도 마찬가지인데, 그림만 보면 아스널의 골 결정력은 1/4밖에 안 된다. 실제로는 1/2인데 말이다.

 

"진하게 표시한 영역을 이용해 숫자값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그 영역의 크기(즉, 면적)가 해당되는 값에 정비례해야 한다."

 

이를 '비례 잉크의 원칙'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원칙만 잘 따지면 엉터리 그래프를 손쉽게 골라낼 수 있다.

 

이 그래프를 보자. 악의 축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면, 이 그래프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것이다. 막대그래프인데도 세로축에 0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면 막대의 면적이 숫자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즉, 비례 잉크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앞서 본 그래프를 살펴보자. 이 그래프도 수치와 잉크양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아래 제대로 그린 그림은 수치와 잉크양이 비례한다. 이처럼 비례 잉크의 원칙만 따져도 웬만한 그래프 장난질은 거의 다 걸러낼 수 있다.

 

요즘을 사람들은 '정보 과잉의 시대'라고 부른다. 너무 많은 정보가 범람해서 어떤 정보가 제대로 된 신호이고, 어떤 정보가 영양가 없는 소음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짜뉴스처럼 사람들을 속이려는 의도로 제작되는 정보도 있다. 우리는 거짓과 기만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이럴 때일수록 똑똑해져야 한다.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언론은 물론이고 정부까지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언제 어디서 장난질이 슬금슬금 기어 나올지 모른다. 특히 그래프 장난질은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그래프라면 덥석 믿고 보는 뇌의 성향을 이용해 우리를 더 쉽게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알짜 신호와 쓰레기 소음을 구분하고 싶다면,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분간하고 싶다면, 거짓과 기만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똑똑하게 살아남고 싶다면, 책 <똑똑하게 생존하기>를 꼭 보길 바란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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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책 <똑똑하게 생존하기>

2) "실수라기엔 너무 틀렸다"···성과그래프 뻥튀기한 정부, 중앙일보 (링크)

 

※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