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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영화 토크] 2016 PGR 아재 무비 어워즈 (PAMA)

※ 이 글은 올 한해 개봉한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충달 : 2016 병신년을 마무리하며 오랜만에 영화 토크로 돌아왔습니다. 농염한 아재들이 모여 올 한해 최고의 영화를 선정하는 시간. PGR 아재 무비 어워즈, 줄여서 PAMA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사회, 기록, 업로드를 맡은 충달입니다.

??? : 근데 나는 Eternity로 소개해? 영원으로 소개해?

충달 : 니 맘대로 하세요.

Eternity : 안녕하세요. Eternity입니다.

Renton : 안녕하세요. Renton입니다.





1. 사운드상 (음향, 음악 통합)

충달 : 가타부타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첫 시상 부문은 사운드입니다. 사운드는 음향과 음악을 통합한 부문입니다. 통합한 이유는 시간입니다. 재작년에는 토크만 10시간에, 타이핑에 수십 시간이 걸렸거든요. (편집자 주 : 그러나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 올해 사운드가 가장 좋았던 영화를 뽑겠습니다. 

Renton : 최근에 가장 강렬하게 본 영화가 <라라랜드>입니다. 음향과 음악을 모두 고려해볼 때 <라라랜드>가 많은 것을 지배했어요.

충달 : 저는 기대감이 엄청났거든요. <위플래쉬>가 너무 좋았으니까요. 기대가 높으면 막상 보고 나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라라랜드>는 그 기대를 충족시켰어요.

Renton : 음악의 쓰임새도 좋았고, 특히 오리지널 스코어* 뮤지컬이라는 점이 훌륭했죠. 라이언 고슬링이 호숫가를 지나며 "City of Stars"를 부를 때 사랑에 빠졌고, 엔딩에서 "Mia and Sebastian's Theme"이 나올 때 제대로 꽂혀버렸어요. 영화를 보고 집에 오자마자 OST를 찾아들었는데 가슴이 벅찰 정도였어요. 지금도 하루에 서너 번씩 듣고 있네요.
*스코어 : 일반적인 작곡(composition)과 구분하여 특별히 영상과 관련한 음악을 작곡하는 것 또는 곡 자체를 의미한다.

충달 : 저도 <라라랜드>! 오리지널 스코어라는 점이 가장 큰 시상 이유입니다. 요즘 뮤지컬 영화를 보면 이미 뮤지컬로 성공한 작품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라라랜드>는 과거의 영광을 취하지 않았어요. 신곡으로 모험을 걸었죠. 그리고 이 정도 결과물을 보여줬다면 칭찬해야 마땅합니다. 음악과 음향이 서사에 잘 녹아든 점도 훌륭해요. 사운드에서는 올해 <라라랜드>가 최고였습니다.

Eternity : 저도 <라라랜드>의 음악을 좋아하고 자주 찾아 들었습니다만, "과연 최고였냐?"라고 묻는다면 조금 생각이 달라요. <라라랜드>의 사운드는 한방이 없었어요. <겨울왕국>의 "Let it go"나 <주토피아>의 "Try Everything"은 주제가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한방이 있습니다. 뮤지컬 영화 중에서는 <드림걸즈>의 "Listen"이 있었죠. 이런 곡들에 비하면 한방의 파괴력은 부족했달까요?

충달 : 그런 면에서 <라라랜드>는 뮤지컬과 영화 중에서 영화 쪽에 방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Eternity : <라라랜드>가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낸 이유는 영상에 있었죠. 사운드는 거들뿐. 그래서 아쉬움이 있어요.

충달 : 그럼 Eternity님은 무슨 영화죠?

Eternity : 그래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주제가상을 꼽으라면 <주토피아>의 "Try Everything"을 뽑겠어요. 주인공 주디의 주토피아 입성 장면에서 흘러나온 음악이죠. 노래와 영상이 100% 호응하는 환상적인 장면이었어요.

충달 : 그럼 사운드상은 <주토피아>?

Eternity : 그런데 주제가만으로 사운드상을 줄 수는 없으니까요. <곡성>도 생각해봤어요. 일광(황정민) 등장 신에서 꼬불꼬불 고갯길을 운전할 때 굿판을 연상시킨 배경음악이 나오는데 그때 영화의 공기가 180도 달라집니다.

충달 : 저는 <샤이닝>의 오프닝이 떠올랐어요.

Eternity : 정말 소름 끼쳤어요. 배경음악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공기를 확 바꾸니까요.

충달 : <곡성>은 음악보다 음향이 훌륭한 영화였죠. 저는 일광의 휘파람이 올해 최고의 사운드 중 하나였어요. 일광이 휘파람을 불며 마당을 훑고 다니자 평범한 공간이 오컬트*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놀라운 연출이었어요.
*오컬트 : 물질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적, 초자연적 현상, 또는 그에 대한 지식을 뜻한다. 신비학(神祕學) 또는 은비학(隱秘學)으로 부르기도 한다.

Eternity : 그런데 <곡성>도 한방이 있었냐고 하면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결론은 <캐롤>입니다. <캐롤>은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이혼을 앞둔 부잣집 중년 부인 캐롤(케이트 블란챗)과 백화점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테레즈(루니 마라)의 치명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캐롤>의 사운드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 1950년대의 공기를 그대로 전달해줘요. 음악 자체도 좋지만, 이를 사용하는 방식도 훌륭했어요. 오프닝과 엔딩이 수미쌍관을 이루며 똑같은 음악이 흐릅니다. 그런데 오프닝과 엔딩의 감성이 전혀 다르게 다가와요.

충달 : 저는 오프닝에서는 음악에 아무 느낌도 못 받았어요. 그냥 레스토랑에서 으레 흘러나올 법한 음악이었죠.

Eternity : 그런데 엔딩에서는 그 음악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어요. 이는 음악이 영화를 관통하면서 엔딩에 이르러 영화를 지배한 겁니다. 음악이 모든 서사를 함축하며 영화 전체를 장악한 셈이죠. 관객이 음악만 들어도 캐릭터의 감성에 동화되었기에 대사가 필요 없었어요. 이런 게 장악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라라랜드>보다 영화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요.

충달 : 마지막에 테레즈 등 뒤에서 음악이 쓱 따라옵니다. 그러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에 감동이 폭발해버렸어요. 그 음악이 너무나 애잔하고 가슴이 아려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Eternity : 전율이었죠. 이 영화를 PAMA 준비하면서 숙제하는 기분으로 봤습니다. 이렇게 급하게 보면 영화를 즐기기 힘들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킵 한 번 없이 푹 빠져서 봤네요. 단번에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이 되었어요. 주변에 강추하고 싶어요.

충달 : 저도요. 누가 봐도 아름다울 영화였어요. 그럼 사운드 부문은 <라라랜드>, <캐롤>, <라라랜드>로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순서는 Renton, Eternity, 충달입니다. 연장자 우대






2. 시나리오상

충달 : 두번 째로 시나리오상을 선정하겠습니다. Eternity님부터 가실까요?

Eternity : 시나리오상. 하... 힘들다. 저는 <스포트라이트>입니다.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천의무봉(天衣無縫), 매끄럽고 완성도가 높아 깔 데가 없죠.

충달 : 저는 무결점의 총사령관. 송병구 같은 영화였어요.

Eternity :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의 시선이 절제되어있고, 담담하고, 신파나 MSG가 전혀 없습니다. 제목은 스포트라이트인데, 누구 하나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하지 않아요. 모든 캐릭터에게 잘 배분되었죠. 심지어는 짧게 등장하는 국장이나 부국장의 존재감도 확실합니다. 원맨팀이 아니었어요. 팀플레이가 인상적이었죠. <스포트라이트>는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이라는 심각한 소재를 다룹니다. 픽션이 아니라 실화죠. 자극적인 소재이기도 하고, 드라마틱하게 연출할 수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탐사 부분까지만 다루죠. 자극적인 부분 직전에서 멈춥니다.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과감한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충달 : 한국 영화였으면 <도가니>가 나왔죠. 소재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영화를 보면서 부들부들하지 않았어요.

Eternity : 플래시백*이 하나도 없어요. 한국이었으면 신부가 성추행하는 장면을 직접 묘사해서 관객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겠죠.
*플래시백 : 과거의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 혹은 그 기법.

충달 : <도가니>에는 관객이 경악하는 장면이 있었죠. 교장(장광)이 화장실 문 너머로 얼굴 내밀 때. 입에서 탄성과 욕이 절로 나왔거든요.

Eternity : 한국 영화였으면 각 캐릭터에 개인 사연을 넣으며 뚜렷한 개성을 부여했겠죠. <도둑들>, <국가대표>, <주유소 습격사건>처럼. 그리고 러브라인도 좀 넣어주고...

Renton : 저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작품이라고 봐요.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소재가 있잖아요. 이걸 JTBC에서 보도하기 직전까지만 다루면 그대로 <스포트라이트> 한국판이거든.

Eternity : 하지만 충무로가 JTBC 보도 직전까지만 다룰까요? 그렇게 만들면 흥행이 어렵죠. 태블릿 PC 보도 직후부터 재밌어졌는걸요.

Renton : 그래도 <스포트라이트>라는 레퍼런스가 나왔으니까요. 한국에서도 <스포트라이트> 스타일의 영화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은 충분하다는 거죠.

Eternity : 제 생각은 달라요. 제가 생각하는 충무로 제작사들은 웰메이드 영화를 따르기보다 관객이 원하고, 관객에게 잘 팔리는 것을 우선으로 고려합니다.

충달 : 이번 박근혜 게이트는 영화로 만들면 <내부자들>처럼 만들겠죠.

Renton : 또 하나 짚고 싶은 부분은, <스포트라이트>처럼 담담하거나 혹은 심심한 영화를 많이들 극찬하는데, 이게 다큐와는 뭐가 다르냔 말이죠.

Eternity : 흔히 다큐가 건조하고 담담한 장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면이 많아요.

충달 : 다큐멘터리 <자백>에서 원세훈이 씨익 웃는 모습을 쫘악 당겼을 때 부들부들했죠.

Eternity : 다큐멘터리는 클로즈업, 정지화면 등으로 현실을 취사선택하죠.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언론의 가장 큰 힘은 무엇을 보도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도하지 않느냐이다.". 다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느냐에 따라 감정을 고조시키고 작품에 방향성을 부과하죠.

충달 : 사실 다큐야말로 가장 주관적이고 정치적인 장르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르가 모큐멘터리 혹은 페이크 다큐죠. <제이슨 본>으로 유명한 폴 그린그래스 작품 중에 <블러디 선데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아일랜드판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작품입니다. 극 영화임에도 다큐처럼 촬영했어요. 얼핏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감정과 사상은 완전히 편향됩니다. '영국 경찰 나쁜 놈들...'하며 분노케 만들어요.

Eternity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면 할머니가 무덤가에서 우는 장면을 수미쌍관으로 길게 잡으며 감정을 끌어올려요. 오히려 다큐이기 때문에 이러한 장면을 넣는다고 봐야죠.

Renton : 즉, 노잼을 선택한 대담함이 완벽한 각본을 만들었다는 말이군요.

충달 : <스포트라이트>의 담담한 기조는 주제와도 연결됩니다. <스포트라이트>에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등장하고, 후반에는 자신의 저널리즘을 반성하는 내용도 나와요.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 휘둘리지 않고, 언제나 차가운 시선 속에 머물도록 만든 점이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해요.

Eternity : 스타일과 서사 밀접하게 닿아있으니 빛을 발하는 거죠. 그냥 담담한 게 아닙니다. 담담한 형식이 주제를 완성했어요.

충달 : 그럼 Renton님은 어떤 작품에 시나리오상을 주셨나요?

Renton : 생각할 것도 없이 <곡성>. 올해 최고의 각본은 <곡성>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놀래게 만들었죠.

충달 : 저도 <곡성>! 이런 영화는 충무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다시는 안 나올 겁니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잖아요. 처음에는 스릴러처럼 시작했다가 오컬트로 빠졌다가 좀비도 나왔다가... 동서양을 다 집어넣은, 말 그대로 장르의 잡탕이었죠. 이 잡탕이 영화를 못 만들면 개밥이 됩니다. 그런데 <곡성>은 완벽하게 버무러지면서 독특한 작품으로 거듭났어요. 마치 부대찌개랄까요?

Renton : 포스터에서부터 현혹이라는 단어가 나오죠. 관객을 현혹한 결과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처럼 의도를 교묘하게 감추었다는 점. 그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Eternity : 저는 의도했다고 봐요. 나홍진 감독은 매 장면을 찍을 때마다 몇 퍼센트의 관객이 현혹될 것인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으로 살굿이 있고, 닭을 사는 장면, 벼랑에서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우는 장면 등등 관객이 헷갈리기를 바라는 포인트가 있었죠. 하지만 너무 현혹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무리수가 있었어요. 살굿 장면을 보면 장승에 말뚝 박는 모습과 외지인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줍니다.
*교차 편집 : 서로 독립된 장면을 엇갈리게 보여주는 편집 기술. 서스펜스를 조성할 때, 액션의 긴박감을 고조시킬 때, 서로 다른 행위들 사이의 대비되는 관계를 설정할 때 주로 사용되는 기법이다.

충달 : 그 장면을 보면 장승을 때리는 행위가 외지인을 향한 공격으로 보이죠. 물론 결말까지 다 보면 "아... 낚였구나." 할 수 있지만...

Eternity : 그 장면을 보는 순간에는 일광과 외지인이 적대관계라고 믿을 수밖에요. 이런 식으로 관객을 현혹하려는 장면들이 무리수가 되어 이야기의 완성도에서 허점이 드러난 셈이죠.

충달 : 그래서 <곡성>이 개봉한 이후에 해석이 많이 나왔어요. 비평이 아니라 해석. 예전에 글로 쓴 내용인데, 감독이 작정하고 관객을 속이려는 장면을 넣었다면 이를 해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이거 다 뻥인데. 데헷." 해버리면 이전의 서사는 말 그대로 끼워 맞추기 나름이거든요. 그래서 무엇이 진실인지 해석하기보다는, 어떻게 관객을 속였는지 따져보는 게 비평적으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어떤 심리를 자극했는지, 어떻게 장르를 오갔는지 말이죠.

Eternity : 영화는 처음 볼 때랑 두 번, 세 번 봤을 때랑 느낌이 다르죠. 그런데 <곡성>은...

충달 : <곡성>은 볼수록 힘이 빠지는 기분이네요.

Eternity : <곡성>은 보면 볼수록 구멍이 눈에 들어와요. 그에 반해 <스포트라이트>는 여러 번 봐도 한결같거든요.

Renton : 하지만 Eternity님이 리뷰에 자주 언급하듯이 영화는 체험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체험하면서 받았던 충격을 부정할 순 없어요. 예를 들어 마술을 두 번, 세 번 보고 나서 마술의 트릭을 알아낸 후에 "이 마술은 트릭을 알고 나니 별로다."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거든요. 마술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충격은 유효했으니까요.

충달 : 그래서 저는 <곡성>은 해석하면 할수록 작품의 가치를 깎아 먹는다고 생각해요.

Renton : <스포트라이트> 같은 영화를 마술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하지만 <곡성>은 마술적 체험이었습니다.

충달 : 그럼 시나리오 부문은 <곡성>, <스포트라이트>, <곡성>으로 마무리... 하기 전에 올해 최고의 명대사 한 번 꼽아보죠.

Eternity : 저는 <최악의 하루>에서 나왔어요. 주인공 은희(한예리)가 남자친구(권율)와 다툰 후에 남산에서 내려오다가 예전에 양다리 걸쳤던 유부남(이희준)과 마주칩니다. 그리고 둘이 차 한잔하는데, 아직도 은희를 좋아하는 유부남이 "요즘 만나는 남자 있냐?"고 묻거든요. 남녀 사이에 오가는 뻔한 질문이죠. 그런데 여기서 은희의 대답이 가관이에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없다는 듯 한참을 쏘아보다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사람 만나는 기계에요?". 이 뻔뻔한 거짓말이 너무나 리얼하게 와 닿아서 빵 터졌어요. 크크크. 거짓투성이라는 연애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날카로운 대사였어요.

Renton : 저도 최고의 명대사는 <최악의 하루>입니다. 같은 장면에서 은희와 유부남이 미묘하게 밀당을 주고받다가 줄이 팽팽하게 땡겨진 순간에 "전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어요."라고 하는데 줄을 끊다 못해 폭파시키는 느낌이었어요. 그 대사를 기점으로 이희준이라는 배우가 3D로 보이는 것처럼 영화에서 도드라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로 나오는 일련의 대사들이 모두 명대사였어요. 공포의 삼자대면에서 도망가는 은희를 보며 "은희 씨 왜 이렇게 빨리 걸으시지?"라고 중얼거리면서 쫓아오는 데 정말 최고였습니다. <부산행>에 나오는 좀비들보다 더 무서웠어요.

충달 : "전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어요."라는 대사. 너무 어이가 없는 개소리라 저도 빵 터졌습니다. 대사의 찰진 정도만 따진다면 올해 최고는 <최악의 하루> 같네요. 그런데 저는 다른 영화입니다. <캐롤>에서 테레즈 남친의 친구(존 마가로)가 하는 대사죠.

Eternity : 복잡하다... 주인공의 남친의 친구...

충달 : 대사는 이래요. "그 사람에게 끌리거나 끌리지 않는 이유는 알 방법이 없다. 우리가 아는 건 그 사람에게 끌리느냐 아니냐 뿐이다." 저는 이 대사가 사랑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논리적으로 따지면 오류예요. 이유는 만들기 나름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둘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부족하다."라는 식의 말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캐롤>은 이처럼 사랑의 본질을 꿰뚫는 장면이 여럿 등장해요. 그래서 동성애 영화이지만, 동성애 영화가 아니기도 합니다. 사랑 그 자체에 관한 영화였어요.






3. 편집상

충달 : 이제 편집상을 골라보겠습니다. 올해는 편집상으로 고민이 많았어요. 편집으로 조지고 들어가는 작품이 없었습니다. 재작년에는 <나를 찾아줘>가 있어서 고민이 없었는데...

Renton : 어휴... 그노무 핀처는 얘기만 하면 맨날 나오네.

충달 : 그래서 고심 끝에 <설리>를 뽑았습니다. <설리>는 허드슨 강에 비행기가 불시착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불시착 사건 자체는 5분도 안 걸렸어요. 그걸 가지고 90분짜리 영화를 만들었죠. 그러다 보니 주로 쓰는 기법은 플래시백입니다. 그런데 보통 플래시백을 쓰면 영화가 촌스러워져요.

Eternity : 왜 그럴까요?

충달 : 상황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니깐 세련미가 떨어지죠.

Eternity : 구구절절 설명하는 기분이군요.

충달 : 그리고 영화의 흐름이 뚝뚝 끊어집니다. 잘못 쓰면 지루해지기 십상이죠. 그래서 플래시백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Eternity : 그럼에도 <설리>를 뽑은 이유는?

충달 : 플래시백을 정말 잘 썼거든요. 5분짜리 사건을 플래시백을 활용하여 90분짜리 매끈한 영화로 만들었어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죠. 그런데 <설리>는 플래시백으로 영웅 서사를 완성합니다. <설리>에는 플래시백이 세 번 등장해요. 각 플래시백은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플래시백에서 영웅의 고난을 보여주고, 두 번째에는 영웅의 자질을 보여주고, 세 번째에 이르러 설리(톰 행크스)를 영웅으로 완성합니다. 아까 대부분의 플래시백이 노골적이라고 했는데, <설리>의 플래시백은 반대로 우회적입니다. 촌스럽게 "설리 짱짱맨"하는 것보다 훨씬 세련되었죠. 이게 거장의 클래스랄까요?

Eternity : 그렇게 훌륭한데 왜 고민했어요?

충달 : 그래도 쩐다는 기분은 안 들었거든요. 머리로는 훌륭한 줄 알겠는데, 가슴에 꽂히지 않았달까요. 그래도 굳이 편집상을 고르라면 <설리>를 고르겠습니다. 뭐... <설리>도 타이틀 하나쯤 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

Eternity : 저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입니다. 장면과 장면을 이어 붙이는 것도 편집이지만,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재배치하는 것도 편집이거든요. <아가씨>에서 전반부는 숙희(김태리)의 시선으로 진행하다가 후반부는 히데코(김민희)의 시선으로 바뀝니다. 그로 인해 같은 사건이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관객에게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요. 이게 편집의 힘이고 편집의 매력이거든요.

충달 : 이런 걸 몽타주*라고 해요. 어떤 장면 뒤에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똑같은 상황이라도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편집의 특성이죠. <아가씨>의 끝단이(유민채)가 몽타주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에요. 하녀로 들어가는 숙희를 바라보며 끝단이가 눈물 흘립니다. 처음에는 끝단이가 숙희와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잠시 뒤에 드러나기로는 자신이 가지 못해 우는 것이었어요. 똑같은 상황이 앞에서는 이타적 장면이었다가 뒤에서는 이기적 장면이 됩니다. 이런 서술 방식을 1, 2장에 걸쳐 극 전체에 녹여냈다는 게 대단했어요.
*몽타주 : 영화의 각 쇼트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또 다른 메시지를 만드는 편집 기법.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은 "쇼트는 다른 쇼트와의 관계에서 의미를 전달한다."라고 하였다. 몽타주가 쇼트와 쇼트 사이에서 이미지를 만든다면, 미장센은 하나의 쇼트 안에서 이미지를 만든다.

Eternity : <아가씨>처럼 몽타주를 큰 스케일로 그리는 영화가 또 있나?

Renton : 그런 건 타란티노 영화에 많아요. <저수지의 개들>을 예로 들면, 미스터 오렌지(팀 로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영화 전체 이야기가 재구성되거든요.

충달 : 그런 타란티노의 특징을 잘 받아 계승한 감독 중에 한 명이 박찬욱이죠. 그럼 마지막으로 Renton님이 선정하신 올해의 편집상을 들어보겠습니다.

Renton : 저는 <빅쇼트>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다룬 영화죠. 영화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서로 연관성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마치 네 명이 한 팀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편집을 절묘하게 붙여놓았어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2007년 미국 부동산 버블로부터 시작된 금융위기. 2008년 세계금융위기, 현재까지 계속되는 경제 불황도 모두 이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Eternity : 그런데 저는 <빅쇼트>가 난잡했어요. 여러 사람이 나오는데 딱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느낌도 없고, 편집도 중구난방 정신없었어요.

충달 : 근데 그렇게 정신없이 중구난방 쑤시는 게 설계였을 수도 있어요. 당시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데도 아무도 사태를 몰랐습니다. 위기인 줄 모르는 게 진짜 위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딱 그 상황이었죠. 그런데 조각조각 흩어진 망조의 단서를 하나하나 짜 맞추다 보니 "아뿔싸. 망했구나. 버블이구나."하고 깨닫습니다. 난잡해 보이는 편집으로 진실을 흩어놓음으로써 결말에 이르렀을 때 충격을 배가시켰죠.

Eternity : 결국 난잡해 보이는 편집도 주제와 일맥상통한다는 말이군요.

Renton : 담담하고 완전무결한 서술이 <스포트라이트> 자체를 말해주는 것처럼, 난잡하고 정신없는 편집도 <빅쇼트> 그 자체였던 셈이죠. 유기적이지 못하다 보니 몰입감은 다소 떨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속도감은 대단하죠. 경제가 어떻게 순식간에 파탄 나는지 관객에게 체감시킵니다.

Eternity : <스포트라이트>가 무결점의 총사령관이라면, <빅쇼트>는 경락마사지나 임요환의 드랍쉽 같네요.

충달 : 그럼 편집상은 <빅쇼트>, <아가씨>, <설리>로 마무리하겠습니다.






4. 비주얼상 (미장센, 특수효과 통합)

충달 : 이번에는 비주얼상을 고르겠습니다. 영화 시상식에는 영상과 관련한 부문이 많아요. 소품, 의상, 미술, 조명, 촬영, 특수효과 등등 정말 많죠. 그런데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는 얼마나 눈이 호강했는지만 따지면 될 것 같아서 비주얼상으로 통합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어떤 요소가 좋았건 영상이 제일 끝내준 영화를 골라주시면 됩니다.

Renton : 제가 먼저 말씀드리죠. 시상 부문이 비주얼로 통합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장 최근에 봤던 <라라랜드>에서 비주얼 뽕을 맞아버렸거든요. 정말 황홀했죠. 그래도 특수효과 측면을 고려했을 때 상반기에 봤던 <정글북>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CG와 실사를 구분하는 시기는 끝났어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어떻게든 위화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깐 그저 좋더군요. 그야말로 정글을 체험하는 작품입니다.

Eternity : <레전드 오브 타잔>과는 다르다... <레전드 오브 타잔>과는... 저도 <정글북> 좋았어요. 실사와 CG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동화적 세계관이 완성되었죠.

충달 : CG가 발달하면서 영화가 다시 연극화되어간다는 생각도 들어요. 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세트도 거대해지고, 촬영 장비가 발달하면서 로케이션 촬영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CG가 발달하면서 블루스크린에 둘러싸인 소극장 같은 세트에서 혼자 연기하게 되었죠. 마치 모노드라마처럼.

Renton : 그래서 이안 맥캘런 옹이 <반지의 제왕> 찍으면서 자괴감이 드셨다고...

충달 : 특수효과만 따지면 <정글북>도 좋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도 좋았어요. 제가 <닥터 스트레인지> 짤평을 쓰면서 "비주얼 혁명들을 계승했다."라고 썼죠. <매트릭스>도 연상되고, <인셉션>도 연상됩니다. 그런데 <닥터 스트레인지>가 기존에 완성된 비주얼을 계승, 발전시켰다면, <정글북>은 자신만의 비주얼 혁명을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Eternity : 글쎄요. 저는 굳이 <덕터 스트레인지>는 완성이고, <정글북>은 혁명이라고 구분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CG의 발전은 이전에도 꾸준히 이어졌고, <정글북>도 그 연장선에 있거든요.

Renton : 하나 첨언하자면 <정글북>은 디즈니 실사화의 분기점이 될 겁니다. <정글북> 감독이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존 파브로죠. 그리고 다음 작품이 <라이온 킹> 영화입니다. 이러면 <정글북>이 디즈니 Full CG 영화의 시초가 될 수도 있겠죠.

충달 : 이런 Full CG 영화의 시초를 따져 본다면 <파이널 판타지(2001)>를 꼽을 수 있겠죠.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거든요. 그러나 Full CG 영화는 항상 이질감이 있었어요. <정글북>에 이르러서야 이질감 없는 Full CG 세계가 완성되었죠. 그래서 Full CG 영화의 제대로 된 시작은 <정글북>이라고 생각합니다.

Eternity : 그런데 <파이널 판타지>를 논하면서 우리의 <디 워>를 빼놓을 수는 없죠.

충달 : 왜 그래여...

Renton : 빼도 돼.

Eternity : 죄... 죄송합니다.

충달 : Full CG를 논하면 안타까운 감독이 스티븐 스필버그죠.

Eternity : <틴틴>에다 올해 <마이 리틀 자이언트>까지... 도전은 꾸준한데 평이 안 좋아요.

Renton : 존 파브로는 정말 영리한 것 같아요. 존 파브로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으로 마블-디즈니의 1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언맨2>에서는 빠지더니 <정글북>을 내놓았거든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그걸 기반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 셈이죠. 디즈니가 실사 영화를 매번 죽 써왔는데 <정글북>으로 이렇게 터뜨렸으니... 정말 대단한 감독이에요. 저는 작년에 가장 좋았던 영화도 존 파브로의 <아메리칸 셰프>였습니다. 이런 감독이 만든 <라이온 킹>이라니 기대할 수밖에요.

충달 : 이번에는 제가 뽑은 작품을 말씀드릴게요. 저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라라랜드>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면서 현란한 영상에 푹 빠졌습니다. 그런데 <라라랜드>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자마자 뇌가 날아가 버리는 줄 알았어요. 엄청난 비주얼 쾌감이었죠. 그래서 결론은 <라라랜드>입니다. <위플래쉬>에 이어 명암도 잘 쓰는 데다가 색감으로 관객을 후두러 패더라고요.

Eternity : 빛도 명암대비에 그친 게 아니라 계절과 연계해서 빛의 뉘앙스를 표현했습니다. 특히 여름이 인상적이었어요. 쨍하게 부서지는 햇살이 그 자체로 둘의 사랑을 전해줍니다.

충달 :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고 같은 도로인데 빛의 뉘앙스가 바뀌면서 "겨울"이라고 자막이 뜨잖아요. 저는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Eternity : 환상의 뮤지컬 공간이 교통 체증의 현실적 공간으로 바뀌었죠.

충달 : 그런 표현이 가능하다는 데서 정말 눈물이...

Eternity : 저도 <닥터 스트레인지>와 <라라랜드> 중에서 고민하다가 <라라랜드>를 골랐습니다. 긴 설명보다 한 마디로 말씀드릴게요. 영상을 보면서 오르가슴,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충달 : 쌌네... 쌌어...

Eternity : 그런 쾌감을 준 영화가 올해는 <라라랜드>가 유일했던 것 같아요. 장면들을 눈에 넣고 매일매일 재생하고 싶을 정도? 특별히 좋았던 장면을 꼽자면 친구들과 파티에 놀러 가기 위해 도로에서 탁탁탁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충달 : 응? 탁탁탁?

Eternity : ... 님 자제요... 그 장면에서 잔잔히 흐르던 음악이 위풍당당하게 바뀌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영상과 사운드가 환상적으로 호응하는 멋진 장면이었죠. 이게 뮤지컬 영화다 싶었어요. 음악과 영상의 조화가 황홀했습니다. 탭 댄스 장면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조명이 바뀝니다.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요. 예전에 이명세 감독이 "영화는 시나리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으로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거든요. 그 말을 제대로 구현한 작품이 <라라랜드>라고 생각해요.

충달 : 영화는 영상으로 말해야죠. 안 그럴 거면 소설 쓰는 게 낫죠.

Renton : 저도 <라라랜드>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래도 특수효과를 생각하면 <정글북>을...

충달 : 그럼 비주얼상은 <정글북>, <라라랜드>, <라라랜드>로 정리하도록 하죠.






5. 남자배우상

충달 : 자 이제 슬슬 재밌는 부문으로 들어갑니다. 남자배우상을 선정하도록 하죠. 보통 영화상은 주연상, 조연상을 구분합니다만, 우리는 시간이 없으니 통합해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로스트 인 더스트>의 제프 브리지스입니다.

Eternity : 이거 본 사람이 얼마 없을 것 같은데...

충달 : 그럴 것 같습니다.

Eternity : 이거 설명이 부실하면 영 공감을 못 사겠는데요.

충달 : 그럼 영화를 간략히 설명해드릴게요. 경제가 몰락한 텍사스의 은행털이 2인조 형제 이야기입니다. 쓸쓸한 사막을 배경으로 카우보이의 몰락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Eternity : 저는 보면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떠올랐네요.

충달 :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세상을 달관한 노인조차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냈다면, <로스트 인 더스트>는 늙고 낡은 카우보이의 낭만을 아쉬워하는 영화입니다.

Renton : 저는 <로스트 인 더스트> 정말 재밌게 봤어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일부와 <파고>의 일부가 짬뽕 된 텍사스랄까? 영화를 보면 약간의 기시감이 있어요. 어디서 본듯한 기분. 이렇게 흘러가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되고, 저렇게 흘러가면 <파고>가 되고. 그런데 결말까지 보면 그 어느 쪽으로도 빠지지 않죠.

충달 : 제프 브리지스는 여기서 보안관으로 나옵니다. 제프 브리지스 나이가 꽤 되죠? 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요. 쭈그렁 할배가 보안관이랍시고 나오는데 너무 비루해 보이죠. 굵은 주름, 처진 가슴, 불룩 나온 배에서 몰락하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빳빳한 셔츠와 모자, 멋들어진 수염에서 몰락하는 낭만을 움켜잡는 허세도 보았죠. 배우의 존재 자체가 그대로 영화의 주제를 표현합니다.

Eternity : <파이란>의 최민식 같은 느낌이네요.

충달 : 제프 브리지스가 곧 영화고, 영화가 곧 제프 브리지스였어요. 이건 무조건 꼽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여성이 주목받는 영화가 많았잖아요. <캐롤>, <아가씨>, <우리들>, <최악의 하루> 등 좋은 영화는 여성이 돋보였죠. 그에 반해 상남자 영화라고 할만한 게...

Eternity : <아수라>?

Renton : <내부자들>은 작년이고...

충달 : 남자 냄새나는 영화들이 힘을 별로 못 썼어요.

Eternity : 듀나가 싫어하는 영화? 개저씨들 나오는 영화?

충달 : 그런데 아재들도 나름의 설움이 있거든요. <로스트 인 더스트>는 그 설움과 회한과 아쉬움을 제대로 담아낸 유일한 영화였습니다.

Eternity : 왜 <빅쇼트>도 있잖아.

충달 : 그건 남자들만 나오는 "경제" 영화지...

Eternity : ...이건 뺍시다. (편집자 주 : 안 돼. 안 빼줘.)

충달 : 제프 브리지스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연기가 좋았어요. 형으로 나온 벤 포스터는 마초의 낭만을 보여줍니다. 끝까지 상남자로 남아요. 그리고 동생으로 나온 크리스 파인이 재평가받고 있죠. <스타 트랙>만 봤을 때는 이 정도로 연기를 잘할 줄 몰랐거든요.

Eternity : 저는 벤 포스터를 보면서 <동주>의 송몽규(박정민)가 떠올랐어요. 배우의 힘과 배역의 힘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충달 : 만약 한국영화로 한정했다면 남자배우상은 <동주>의 박정민 뽑고 싶네요. 하지만 수상자는 제프 브리지스로...

Renton : 저는 제프 브리지스보다 두 형제 쪽에 눈길이 갔어요. 이 영화는 크리스 파인에게 분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꽃돌이 스타가 이렇게 연기를 잘 할 줄이야. 형 역할로 나온 벤 포스터도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ternity : 저는 올해 남자배우 중에서 "이 배우 쩔었다."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서 진짜 고민이 많았습니다. <터널>의 하정우인가, <동주>의 박정민인가, <곡성>의 곽도원인가... 생각해보다가 내가 제일 좋았던 연기를 뽑아야겠다 싶어서 <곡성>의 황정민으로 정했습니다. 이전에 제가 황정민을 가열차게 비판했던 글도 썼었죠.

Renton : 이 분 황정민 안티로 유명하신 분.

Eternity : 당시 황정민은 신파 그 자체였어요.

Renton : 질려버렸죠.

Eternity : <국제시장>을 시작으로 <베테랑>, <히말라야>, <검사외전>까지... 지겨웠죠. 그래서 <곡성>에서 어떨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처음 등장하는 꼬불길에서부터 아우라가 범상치 않았습니다. <곡성>에서 황정민 첫 대사가 "바깥에 문 좀 닫아라."였죠. 대사를 듣는 순간 지금까지의 황정민과는 전혀 다른 배우로 다가왔어요. 그동안의 신파나 진부함은 사라지고 <곡성>의 일광만 있었습니다.

충달 : 크으~~ 클라스!

Eternity : 감독과 작품에 따라 배우가 이렇게까지 변모하더군요. 그 변화의 정도가 놀라웠어요.

Renton : 우리가 계속 진부하다고 비판한 이유도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때도 감독이 바뀌면 황정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죠. 그리고 <곡성>에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Eternity : 클래스를 제대로 입증하며 놀라움을 선사한 배우가 <곡성>의 황정민이었어요.

충달 : 어떤 장면이 제일 좋았어요?

Eternity : 어렵네요. 살굿신도 좋았고... 사실 등장부터 좋았어요. 생각해보니 등장신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Renton : 극의 흐름을 바꾸는 신호탄이었죠.

Eternity : 어떤 특정한 장면보다는 일광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극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는 점이 대단했어요.

충달 : 그런데 곽도원이 못 받는 게 너무 아쉽네요.

Eternity : 곽도원도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죠. 둘 다 최고였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분위기를 마음대로 지배했던 황정민을 뽑고 싶네요.

충달 : 마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디카프리오보다 매튜 매커너히가 돋보인 것과 비슷하네요. 주연보다 강력한 조연.

Eternity : 과거 <부당거래>, <신세계>의 황정민이 돌아와서 반가웠어요.

Renton : 폼은 일시적이어도 클래스는 영원한 법.

충달 : 그럼 마지막으로 Renton님.

Renton : 저도 올해 남자배우는 정말 고민했어요. <내부자들> 이병헌이 청룡에서 남우주연상을 탔는데, 이에 불만을 느끼기도 애매할 정도로 남자배우가 고만고만했습니다.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내가 정말 반한 배우가 있었나 생각하면 없었던 것 같아요. <동주>의 박정민이 좋긴 했는데, 사실 박정민은 <파수꾼>에서 더 좋았거든요. 그래서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빅쇼트>로 돌아와 스티브 카렐을 뽑았습니다.

충달 : Renton님은 올해 완전 <빅쇼트>네요.

Renton : 사실 모든 배우가 좋았어요. 그래도 <빅쇼트>의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한 배우는 스티브 카렐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장면을 꼽자면, 처음 집 파는 양아치 부동산 업자를 만나고 나서 "아... 버블이구나!"하고 깨달았을 때 표정. 그리고 채권을 만드는 사람과 만난 후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알고 좌절할 때,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선택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스티브 카렐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Eternity : 브래드 피트는 대사로 주제를 말하잖아요. "너희가 지금은 좋아하지만, 이게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말이었죠. 그런데 스티브 카렐은 이를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더군요.

충달 : 대사로 전달하면 머리에는 남아도 가슴에는 안 남아요. 그런데 스티브 카렐 표정을 보면 확실히 X 됐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요.

Eternity : 그런데 스티브 카렐 대표작이 있나요?

Renton : 전작 <폭스캐처>가 미친 듯이 좋았죠.

Eternity : 저는 스티브 카렐을 <빅쇼트>에서 처음 봤는데 더스틴 호프만 느낌도 나고...

Renton : 스티브 카렐도 코가 크긴 하죠.

Eternity : 아니 그런 거 말고 아우라가... 발성도 독특하더군요.

Renton : 발성은 작품마다 다 달라요. 진짜 베테랑 배우입니다.

충달 : 원래 스티브 카렐은 코미디 배우였죠.

Renton : 짐 캐리 영화에도 나오고, SNL에도 출연했죠.

Etenity : 그러고 보니 짐 캐리와 비슷한 면도 있네요. 코미디 배우지만 페이소스를 담아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요.

Renton : <폭스캐처>를 본 사람은 스티브 카렐에게 빠질 수밖에 없고, <빅쇼트>를 보면 왜 상을 안 주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충달 : 진짜 왜 상을 안 주는 거야. 크크크.

Renton : 오스카가 보수적이어서 코미디 배우에게 박하거든요. 짐 캐리도 받을만한 작품 많았는데 골든글로브만 받았고. <트루먼 쇼>하고... 그 뭐드라? 케이트 윈슬렛하고 나온 작품...

Eternity : <타이타닉>?

충달 : AC 진짜... 사람들이 Eternity의 실체를 알아야 돼. <타이타닉>이 왜 나오냐고!

Renton : <이터널 선샤인>이었죠. 그 영화에서 짐 캐리가 상 받을 만 했는데 놓쳤고, 스티브 카렐도 <폭스캐처>에서 받을 만 했는데 놓쳤죠. <빅쇼트>는... 디카프리오가 상 달라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그래서 더욱 스티브 카렐을 뽑고 싶었습니다.

충달 : 그럼 남자배우상은 <빅쇼트>의 스티브 카렐, <곡성>의 황정민, <로스트 인 더스트>의 제프 브리지스로 마무리하겠습니다.






6. 여자배우상

충달 : 드디어 아재들이 고대하던 여자배우상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올해는 여배우가 주목받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남자배우에 비하면 고르기 훨씬 수월했어요. 다만 누굴 주느라, 누굴 못 줘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럼 Renton님부터 들어보죠.

Renton : 저는 <아가씨>의 두 배우가 좋았는데, 그래도 중심을 잡아준 김민희를 뽑겠습니다. 그런데 스캔들에 묻혀가지고...

충달 : 쉿... 그녀의 이름을 말해선 안 돼.

Eternity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았어요?

Renton : 제가 배우상을 고르는 기준은 영화에서 빛이 나야 해요. 영화를 씹어먹는 기분이 들어야 합니다. <아가씨>에서는 김민희만 보일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백치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영악한 모습도 보여주죠. 백치미가 도드라지는 장면은 1장에서 이빨 갈아주던 장면. 그때의 눈빛은 업진살처럼 살살 녹았죠. 그리고 2장에서 비열하게 바뀌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충달 : 김민희는 이미 우리나라 여배우 탑급이죠.

Eternity : 저는 <아가씨>의 김민희가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김민희가 김민희를 넘어서지 못한 느낌?

충달 : 거기서 어떻게 더 넘어요;;;

Eternity : 김민희가 좋았던 기존 작품이 많죠. <화차>, <연애의 온도>...

Renton : 하다못해 똥망작에서도 좋았어. <우는 남자>.

Eternity : <화차>에서의 김민희는 전율이었죠. 약 빨았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아가씨>에서는 기존에 갖고 있던 재능을 복제 재생산한 기분입니다. <화차>만 못했죠. 박찬욱은 배우들이 보유한 재능 이상을 끌어낼 줄 아는 감독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의 배두나, <올드보이>의 강혜정,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박쥐>의 김옥빈. 김옥빈은 재평가 수준이었죠. 박찬욱은 여자배우의 잠재력을 잘 끌어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박찬욱과 만난 김민희는... 내가 알던 평소의 김민희였습니다.

Renton : 연기가 이슈에 너무 묻히는 감이 있어서 굳이 꼽은 면도 있습니다. 만약 김민희가 아니라면 <최악의 하루>에서 한예리를 뭐라도 하나 주고 싶네요.

Eternity : 저도 국내 한정이라면 한예리 줬을 겁니다.

충달 : 그래서 누구죠? 김민희? 한예리?

Renton : 그렇지만 김민희!

Eternity :  한예리도 잘했지만, 대사가 워낙 맛깔나서 배우를 돋보이게 살려준 바도 있어요. 대사의 힘? 정확히는 캐릭터 자체의 힘이 좋았죠.

충달 : 김민희를 굳이 구분하자면 어느 쪽일까요? 하정우 스타일? 최민식 스타일?

Eternity : 최민식 과죠!

충달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작품에 따라서 자기를 바꾸기보다는 어떤 배역이든지 김민희 화 시키거든요.

Eternity : 전형적인 메소드 파 배우죠.

충달 : 이번에는 Eternity님이 생각하시는 올해의 여배우를 들어봅시다.

Eternity : 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입니다. 가장 관객을 사랑에 빠지게 만든 연기였어요. 배역뿐만 아니라 배우한테도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충달 : 지금 뭔가 굉장히 포장하고 계시는데,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한테 꽂혔다는 말씀이잖아요.

Eternity : 맞아요. 완전 제 스타일이었어요. 제 이상형인 앙칼지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상이거든요. 그리고 연기도 좋았잖아요. 엠마 스톤의 연기는 묘한 면이 있어요. 고전적인 연기도 잘 소화하면서 현실적이고 개성적인 모습도 보여줍니다. 식당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신데렐라처럼 뛰어가는 장면은 상당히 고전적이었어요. 그러데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찾아와 오디션 기회를 알려줬을 때는 현실적인 투정을 보여줍니다. 이때 엠마 스톤 본연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어요.

충달 : 저에게 엠마 스톤 본연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은 "I Ran"이었어요.

Eternity : 그 장면 보면 완전 또라이 같죠.

충달 : 엠마 스톤이 원래 또라이라고 합니다. 크크.

Eternity : "I Ran" 장면에서는 똘끼를 분출하면서 관객을 당황시키고 웃게 만들다가, 오디션 장면에서는 숙녀가 되어 관객의 마음을 흔듭니다. 공주와 망나니를 오간달까요? 그런 매력이 정말...

충달 : 완전히 꽂히셨네요.

Eternity : 완전 내 스타일! 하정우가 미워할 수 없는 본연의 매력을 가진 것처럼 엠마 스톤도 뭘 해도 사랑스러운 본연의 매력을 갖고 있어요. 결론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Renton : 나는 엠마 스톤이 <라라랜드>에서는 평소보다 안 이쁘게 나온 것 같더라고...

충달 : 다른 영화에서는 메이크업이 진했는데. 이번에는 수수했죠.

Renton : 초반에는 진짜 촌스러웠어요. 화장하고 배우가 되니깐 이쁘더군요. 그래서 다음에는 좀 꾸미는 역할이 많았으면 좋겠다?

충달 : 엠마 스톤이 가장 좋았던 장면은 뭔가요?

Renton : 오디션 보러 갔을 때. 주변에서 전화 받고 사람들 들락날락하니깐 당황하는 모습. 집중이 안 돼서 표정은 썩어들어가는데 어쨌든 연기는 해야 하는 미묘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더군요.

Eternity : 그런 생활 연기가 좋았어요. 오디션에서 당황하는 연기. 오디션 포기하겠다는 말에 세바스찬이 소리 지르니깐 조용히 하라는 연기. 이런 모습이 현실과 밀착된 느낌입니다.

충달 : 저도 오디션 망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난이도 최고라고 생각하는 연기가 연기 못하는 연기입니다.

Eternity : 심지어 아예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아예 못하는 연기는 쉬워요.

충달 : 딱 오디션에서 떨어질 정도의 연기.

Eternity : 그 어중간한 부분을 짚어내서 표현한다는 게 정말 대단하죠.

Renton : 저는 놀라는 장면은 다 좋았어요. 처음에 세바스찬이 피아노 치는 거 보고 놀라서 바라보는 장면에서 엄청 예뻤어요.

Eternity : 표정이 살아있는 배우죠.

Renton : 그때는 그냥 지나갔는데, 이걸 막판에 엔딩에 붙여주니깐 그냥... 막... 어우...

Eternity : 정말 환상적이었죠.

충달 : 그럼 마지막으로 제 차례네요. 저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래 저도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었습니다.

Eternity : 올해의 여배우? 하는 순간 딱 떠오르죠.

충달 : 정말 그랬어요. 그런데 PAMA 준비하면서 저도 숙제 삼아 <캐롤>을 봤는데, 이걸 보고 나니깐 <캐롤>에 연기상을 안 줄 수가 없었습니다.

Eternity : 게다가 여배우가 둘이잖아요. 누구누구였죠?

충달 : 케이트 블란챗하고 루니 마라. 그래서 <라라랜드>와 <캐롤>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도저히 <캐롤>을 무관으로 넘길 수 없어서 결국 <캐롤>의 루니 마라를 꼽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어요. 칸에서 루니 마라가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왜 공동수상 안 주냐? 케이트 블란챗과 루니 마라 공동 수상해야 한다."라는 항의가 있었죠.

Eternity : 이해가 갑니다. 저는 케이트 블란챗이 더 좋았거든요.

충달 : 하지만 제 신념 상, 여기가 무슨 MBC 연기대상도 아닌데 공동수상은 개뿔이고 무조건 한 명 줘야 했습니다.

Eternity : 그런데 왜 루니 마라에요?

충달 : <캐롤>이 여여 간의 사랑이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이었으면 돈 많은 유부남이 젊은 여자 꼬시는 내용에 불과해요. 이러면 갈등은 유부남이 합니다. 나는 가정이 있는데 왜 저 여자가 끌리지?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여여 간의 사랑이 되면서 갈등하는 존재가 젊은 여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여자를 좋아해도 되나?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맞나?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표현하지? 이런 고민이 정말 세심한 부분이라 연기하기 어려운데, 루니 마라는 이를 완벽하게 연기했어요.

Eternity : 그러니깐 남자가 봐도 여여의 사랑에 공감하는 거죠. 애잔하고 슬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니까요.

충달 : 그래서 케이트 블란챗과 루니 마라 중에 저는 루니 마라를 선택했습니다. 보다 깊이 있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ternity : 그 얘기에 공감하면서도 제가 케이트 블란챗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비록 남자지만, 저런 여자라면 동성이라도 끌릴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정말 매혹적이었습니다.

충달 : 그러니깐 케이트 블란챗한테 꽂혔다는 말씀이잖아요.

Eternity : 내 스타일이야! <캐롤>은 시선의 영화라는 말이 있던데, 그 시선이 너무나 매혹적이니까요.

충달 : 처음 백화점에서 만났을 때부터 노골적으로 쳐다보죠. 매혹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Eternity : 그리고 엔딩까지...

충달 : 엔딩에서 둘이 마주 볼 때, 저는 <관상>의 송강호가 떠올랐어요. 회한에 찬 복잡미묘한 표정. 그걸 송강호 혼자 했을 때도 "캬~ 죽인다." 이랬는데 <캐롤> 마지막에서는 두 사람이 합니다. "이야... <관상>의 두 배네."라면서 봤네요.

Renton : 저 바꿔야겠어요. 지금 딱 떠올랐는데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마고 로비.

충달 : 이건 뭐야. 크크크크.

Renton : 지금 돌아가는 걸 보니깐 올해의 여배우가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각자 꽂힌 배우를 꼽고 있는데, 그럼 나도 마고 로비 가겠어요. 작년부터 올해까지 혼자서 영화를 하드캐리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 사살 보통 영화라면 캐리하는 배우야 종종 나와. 그런데 이 정도 쓰레기. 이 정도로 망한 영화에 숨을 붙여놓은 존재는 지금까지 없었어요.

Eternity : 심지어 단독 영화까지 예정되었죠.

충달 : 영화뿐만 아니라 올 할로윈까지 지배했죠.

Renton : 이 정도 파괴력. 이 정도 캐리력. 할리퀸의 마고 로비밖에 없습니다.

충달 : 여러분. 이게 PAMA입니다. 왜 아재 어워즈인가? 여배우 선정에 이렇게나 흑심이 들어갑니다. 연기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내가 꽂힌 게 중요해.

Eternity : 에이... 그건 아니지. 아까 김민희를 두고 치열한 토론도 했잖아요. 그럼에도 마고 로비의 할리퀸은 선택하지 않을 수 없어요. 지금 올해의 여배우를 고르고 있잖아요. 올해 할리퀸보다 핫한 캐릭터가 어딨겠어요.

충달 : 아카데미에서 마고 로비한테 여우주연상을 주면 최소 무슨 '사태'가 벌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크크크.

Eternity : 크크크. 엠마 스톤에서 바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저는 할리퀸에 무릎을 쳤습니다.

Renton : 마고 로비. 올해 그 이상의 여배우는 없었습니다.

Eternity : 인정. 인정.

충달 : 뭘 인정이야. 난 인정 못 해!!!

(편집자 주 : 결국, 여자배우상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마고 로비,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 <캐롤>의 루니 마라로 선정되었습니다)






7. 발연기상

충달 : 훌륭한 배우들을 뽑았으니 올해 최악의 배우를 뽑아봅시다. 발연기상을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ternity : 근데 왜 이건 남녀 통합이에요?

충달 : 이것까지 세분화하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요. 슬프니깐 한 명만 뽑읍시다. 저부터 시작할게요. 올해 짤평 중에서 가장 핫했던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리암 니슨입니다. 하... 진짜 이 배우를 가지고 이것밖에 못 하나 싶었어요. 도대체 왜 나온 거죠? 리암 니슨 말고 그냥 <서프라이즈>에서 재연 배우 아무나 데려왔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요. 심지어 리암 니슨을 썼으면서 제대로 쓰지도 못해가지고 리암 니슨 나오는 장면과 나머지 배우들이 나오는 장면이 따로 놉니다.

Renton : 이정재가 나오는 영화 한 편하고, 리암 니슨이 나오는 연극 한 편을 어거지로 붙여놓았죠.

충달 : 이게 할리우드 배우가 비싸니깐. 리암 니슨은 며칠만 데려온 거겠죠. 그사이에 촬영을 다 마쳐야 하니 리암 니슨 등장 장면만 싹 촬영하고, 나머지 장면을 찍은 겁니다. 그래도 감독이 잘 찍었으면 서로 얼굴 한 번 안 마주친 맥아더(리암 니슨)와 장학수(이정재)가 마주했을 때 카타르시스가 팍 분출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이 너무나 어설퍼서... 장학수가 살아있을 때 마주친 장면은 <서프라이즈> 수준이었고, 죽고 나서 경례하는 장면은 국방부 정훈교육 자료였죠.

Eternity :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설파하면서 한국의 소년병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이 소년의 나라를 꼭 구하겠다. 와... 이 장면은 진짜... 내가 뭘 보는 건지...

Renton : 거기까지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전까지 대립각을 세우던 인물이 소년병 이야기를 듣더니 감동해버려요. 아니 왜 감동하냐고! 지금 전략회의 중인데 감성팔이 하냐고 쿠사리 맥이지는 못할 망정... 리암 니슨을 최악의 배우 줄 거면 그 자리에 함께했던 <서프라이즈> 재연 배우들 전부 함께 공동 수상시켜야 합니다.

충달 : 정말 최악의 연기였어요. 이럴 거면 뭐하러 썼나 싶습니다.

Eternity : 저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고 그 배우에 대한 기대치 등을 고려해서 정해봤습니다. 그래서 제일 실망스럽고 짜증 났던 발연기는 <아수라>의 정우성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욕 못하는 배우는 처음 봤네요. 욕할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었어요. 정우성이 <아수라>에서 보여준 건 어설프게 욕하거나 으르렁거리며 대드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정우성 연기 못하는 게 만천하에 드러난 작품이었어요.

Renton : 그래도 <똥개>에서는 연기 괜찮았는데...

Eternity : 글쎄요 감독의 역량 차이일까요? 욕을 그따위로 뱉으면 감독이 NG를 외쳐야죠. 그걸 그냥 넘어갔다는 게... 김성수 감독이죠? 감독의 문제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Renton : 아니 주변에 연기 쟁쟁한 배우들 잔뜩 있었구먼, 거 욕하는 노하우도 좀 교환하고 그런 건 안 되는지...

Eternity : 정우성이 애절한 눈빛 덕분에 그동안 멜로는 잘 소화했죠.

충달 : <내 머리 속의 지우개>처럼...

Eternity : 그런데 이번에 가려져 있던 정우성 연기의 밑바닥이 낱낱이 드러났어요. 연기에 깊이가 없었습니다. 보는 내가 창피했어요.

Renton : 저는 <인천상륙작전>의 모든 부대원과 리암 니슨 옆에 있던 <서프라이즈> 재연 배우들 전부 다 주고 싶지만, 그래도 한 명 선택한 것은 <럭키>의 이준입니다. 연기가 전혀 늘지 않고 정체됐어요. 뭐 본인도 연기 잘 못 했다고 할 정도니...

Eternity : 이준이 원래 연기 괜찮은 아이돌이었는데. 영화도 곧잘 찍었어요. 연기 못하는 아이돌 이미지는 아닙니다. <손님>이나 <배우는 배우다>에서 나쁘지 않았어요.

Renton : 연기를 곧잘 하는데도 불구하고 발전이 없어서... 혼자서 연극 하고 있더군요. 그래도 발전 가능성이 있어서 더 잘하라는 의미에서 뽑아봤습니다. 대신 진발연기를 뽑자면 <인천상륙작전>의 추성훈.

Eternity : 그래도 추성훈은 전문 배우는 아니잖아요. 좀 감안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Renton : 그래도 너무 못해서... <인천상륙작전>에 발연기가 많았는데도 추성훈의 발연기는 군계일학이었어요. 이준은 더 잘하라는 의미였다면, 추성훈은 제발 영화판에서 다시는 안 봤으면 합니다.

충달 : 이 부문에 더 어울리는 배우는 추성훈이네요. 그럼 발연기상은 추성훈, 정우성, 리암 니슨으로 정하겠습니다.

Eternity : 이야... 쟁쟁하다. 쟁쟁해.






8. 변비상 (최악의 작품상)

충달 : 자 이제 최악의 작품상입니다. PGR의 상징은 똥이니깐, 그 똥이 안 나오면 고통스럽거든요. 그래서 똥이 안 나오는 최악의 작품을 변비상으로 이름 지었습니다. 올해는 전체적으로 풍작이었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운 작품은 있었습니다. 저는 <인천상륙작전>입니다. 이 영화가 얼마나 구린 영화인지는 짤평에 잘 써놨습니다. 액션도 구리고, 시나리오도 구리고, 연기도 구리고, 연출도 구리고... 다 구렸어요. 뭐 비슷하게 구렸던 영화도 있었습니다. <사냥>이라고. <사냥>도 다 구렸어요. 그럼에도 굳이 <인천상륙작전>을 고른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사상이 추잡하고 촌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식당에서 림계진(이범수)이 장학수(이정재)한테 "너 첩자 아니야?" 하면서 떠보는 장면이 나오죠. 제대로 된 첩보 영화였으면 그 순간에 거짓으로 "김일성 만세." 해주고 넘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그 순간조차 반공의식에 젖어서 "아닌데요." 이러고 나옵니다. 이게 무슨 긴장감이 생기겠어요. 반공주의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장면이었습니다.

Eternity : 그렇다고 영화가 완전 노잼이냐.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충달 : <인천상륙작전>이 한국의 <바스터즈>라고 하셨던가요? -_-+

Eternity : <바스터즈>의 향기가 살~짝 난다고 했죠. 어떤 의미냐면 군사 첩보물이고,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속고 속이는 긴장감, 정체를 들킬 것 같은 똥줄. 이런 걸 구현해보려 한 것 같아요. 그런 느낌적인 느낌 면에서 이 영화를 보는데 타란티노의 <바스터즈>가 살짝 떠오르더군요. 아주 살짝.

충달 : 저는 <바스터즈>의 냄새조차 용납할 수 없습니다. 상황만 바스터즈와 유사할 뿐이지 냄새는 똥냄새가 나는데...

Eternity : 그래도 앞부분은 나름 재밌게 봤어요.

Renton : 초반 15분의 리듬감과 속도감. 그리고 스릴과 서스펜스는 충분히 비벼볼 만 했어요. 기차신부터 림계진 등장할 때까지는 음악부터 쪼이는 게 대단합니다. 시작 15분은 좋았어요. 그런데 조루도 이런 조루가 없더라고...

Eternity : 어헣헣↗

Renton : 이 영화는 초반까진 <작전명 발키리>와도 닮았어요. 워낙 소재가 좋으니깐. 인천상륙작전도 분명 판을 깔아준 사람들이 있잖아요. 굳이 상륙 장면 넣을 필요 없이 그 앞까지만 구현하면 되는데. 이걸 인천에 상륙도 해야 하고, 맥아더도 나와야 하고, 국뽕을 계속 넣으니깐 영화가 힘이 쫙 빠져버리죠.

Eternity : 거기다 캐릭터마다 에피소드도 넣어줘야 하고.

Renton : 애초에 전부 살려줄 수 없는 이야기인데 엄마도 나오고, 자식도 나오고, 도련님에 노비에 무슨 이야기가 중구난방 잡탕도 아니고. 영화가 뒤로 갈수록 추잡해...

Eternity : 추잡 크크크크 빵 터졌네요. 너무 적절한 표현이라서. 흐흐흐. 어쨌든 나는, 영알못이라고 까이더라도 <인천상륙작전>에 재밌는 부분은 있었다고 일부 인정해주고 싶어요.

충달 : 조루도 이런 조루가 없다는데 맞장구치면서 뭘 인정해줘요;;;

Renton : 영화 시작 15분 이후에 이렇게 몰락한 이유가 정말 감독의 역량 탓인가? 아니면 제작사의 입김 탓인가?

Eternity : 리암 니슨 탓인가?

Renton : 아니 도대체 리암 니슨은 누가 부른 거야? 아무튼, 책임져야 할 죄인이 있을 겁니다.

충달 : <포화 속으로> 생각하면 그냥 감독 탓인 것 같아요.

Renton : 그래도 <포화 속으로>는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Eternity :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이 우리가 이렇게까지 다뤄야 할 영화야?

Renton : 진짜 망작이지.

충달 : 그냥 망작이었는데 끼어들어서 볼만하다고 얘기한 게 누군데 지금;;;

Eternity : 아니 볼만하다는 건 아니고 재밌는 부분은 있었다는 거죠. 지금 분위기가 <인천상륙작전>을 안 까면 너무 영알못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서... 저는 그런 일방적인 분위기를 싫어해요.

Renton : 작년의 <국제시장> 같은 느낌이지.

충달 :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은 안 깔 수가 없잖아요. 기본적인 촬영부터가 엉망인데. 저는 <국제시장>은 좋게 본 편이에요.

Renton : <인천상륙작전>이 별 한 개면, <국제시장>은 세 개 준다.

충달 : 저는 <인천상륙작전> 별 한 개면, <국제시장>은 네 개까지 줍니다.

Eternity : <히말라야>는?

Renton : <히말라야>도 <인천상륙작전>에 비비면 재밌었죠. <히말라야>는 웃기기라도 하잖아. 정우도 괜찮고...

충달 : 그럼 <인천상륙작전>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합시다. 너무 몰입해버렸네요. 다음은 Renton님?

Renton : 영화 보는 내내 변비에 걸린 것처럼 답답하고 재미없다고 느낀 영화는 <조이>였습니다. 저는 데이비드 O. 러셀 감독한테 기대가 컸어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파이터>, <아메리칸 허슬>까지. 기대하고 봤는데도 이렇게 세상 재미없게 영화를 찍을 줄 몰랐습니다.

충달 : 데이비드 O. 러셀이 작가주의적인 면모가 있어요. 나름 자기 세계관이 뚜렷해서 영화를 괜찮게 만들어 오다가 <조이>에서 완전히 자기만의 세계에 매몰되었습니다.

Renton : 영화의 시놉시스는 가정 파탄과 가난으로 절망에 빠진 여자가 홈쇼핑으로 대박을 내면서 승승장구하는 성공담입니다. 그런데 이를 <스포트라이트>처럼 찍었어요.

Eternity : 오...

Renton : 성공기를 전혀 그리지 않았죠. 누구도 성공한 사람이 없게 찍었습니다.

Eternity : 그런 의미에서? 담담하게 찍은 게 아니라?

Renton : 담담한 걸 떠나서... 그냥 찍었다고 해야 하나? 이야기에 기름기가 쪽쪽 빠져있어요. 기름기를 짤순이로 짜다가, 짜다가 너무 짜내면 영화가 이렇게 노잼이 됩니다. 너무 재미없었어요.

충달 : 제가 짤평쓰느라 리뷰를 잘 안 쓰잖아요. 그런데 <조이>는 보고 나서 너무 빡쳐서 리뷰를 썼어요. 심지어 제목이 "치명적 노잼의 원인은 무엇인가?"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치명적 노잼.

Renton : 세상 노잼도 이런 노잼이 없어...

충달 : 변비상 <조이> 인정합니다.

Eternity : 저는 변비상에 <검사외전>입니다. 왜 <인천상륙작전>이 아니고 <검사외전>이냐? 저는 정직하게 못 만든 영화는 용납해도, 관객을 속이는 비열한 영화는 용납 못 해요. <인천상륙작전>은 멍청한 영화입니다. 정직하게 못 만들었어요. 그냥 망작이야. 그런데 <검사외전>은 현란하고, 배우들 빠방하고, 때깔 좋고, 버디 무비 느낌도 나고, 특히 편집의 속도감이 좋습니다. 언뜻 보면 재밌고 잘 만든 영화 같아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알맹이가 없어요.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 재미있는 척하는 영화죠. 재작년의 <역린>하고 비슷합니다. 저는 대놓고 못 만든 영화는 동정하는데, <검사외전>은 관객을 기만하는 영화였어요.

충달 : <역린>은 지들이 뭔데 역사를 그렇게 난도질하는지...

Eternity : 처음에 정조(현비)가 푸쉬업 하는 장면부터 어처구니가 없죠.

충달 : <검사외전>으로 사회비판도 패션이냐는 글을 쓰셨잖아요. <역린>이나 <검사외전>이나 뭔가 있는 척하는 게 좀 불쾌하죠. 실상 까보면 알맹이는 하나도 없거든요.

Renton : 요즘 그게 문제에요. 사회비판 메시지 하나씩 담아가지고 영화 만드는 게 유행 중이에요. 이거 문제입니다.

Eternity : 물론 이전에도 그런 작품들은 있었지만, <검사외전>이 최첨단에 있어요. <검사외전>이 망해야지 이런 영화가 안 나오는데, 추후에 비슷한 작품이 분명 또 나올 겁니다. 지금 신랄하게 까줘야 해요. (편집자 주 : 그리고 <마스터>가 나왔다고 한다...)

충달 : 차라리 <검사외전>이 끝까지 통쾌한 버디 무비로만 끝났으면 저도 욕을 덜 했을 것 같은데, 법정 시퀀스부터 영화가 심하게 망가졌습니다. 자기가 무슨 정의의 사도인 척 하는 게 좀... 역겹죠. 정의감으로 돈벌이하는 기분.

Eternity : 다 역겨워요. 사건 해결 과정도 강동원 얼굴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입니다. 얼굴빨로 다 해결해버리죠. 그래서 멍청한 <인천상륙작전>보다는 간교하고 비열한 <검사외전>이 더 나쁘다고 말하고 싶어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 : 기계 장치로 내려온 신(神). 문학작품에서 결말을 짓거나 갈등을 풀기 위해 뜬금없는 사건을 일으키는 문학적 구성 장치.

충달 : 참... 병신년 한 해에도 주옥같은 영화들이 많았네요. 변비상은 <조이>, <검사외전>, <인천상륙작전>으로 정리하겠습니다.






9. 똥상 (꿀잼상)

충달 : 서서히 끝을 향해 가네요. 이제 좋았던 작품만 선정하면 됩니다. 똥상은 3등상이 아니라 꿀잼상입니다. 작품성은 배제하고 오로지 오락성만 따져 최고의 작품을 선정합니다. 똥상(꿀잼상)을 선정하는 이유는, 보통 시상식에서는 작품성만 주목받거든요. 하지만 팝콘 무비도 나름의 가치가 있습니다.

Eternity : 영화는 재밌으려고 보니까요. 재밌는 영화를 보고 싶어서 극장에 가고 돈을 지불하는 거죠.

충달 :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은 재밌어야 해요.

Eternity : 특히 영화는 대중 예술이니까요.

충달 : 그럼 Eternity님부터 말씀해주시죠.

Eternity : 저는 세 작품이 경합했습니다. <데드풀>, <닥터 스트레인지>, <부산행>. 개인적인 취향은 <데드풀>이었지만, 종합적으로 따져보아 <부산행>을 선정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고,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는 영화였습니다. 마치 언제 끝날지 모르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어요. <부산행>이라는 열차에서 내릴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관객을 몰아붙이는 좀비 영화가 또 있었나 싶어요. 좀비물에 한정하지 않아도 올해 관객을 이렇게 쪼그라들게 만드는 영화는 없었습니다.

충달 : 저도 <부산행>입니다. 짤평에 그렇게 썼어요. 오줌이 마렵다고.

Eternity : 기저귀가 필요한 영화죠.

충달 : 다만 서사나 후반부 연출의 허술함이 문제였죠. 이랏샤이마세라든가, 분유 광고라든가.

Eternity : 마지막 터널에서 뜬금없는 노래도 그렇고...

충달 : 그래서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엄청 호평받고 있어요. 이를 보고 "해외에서 신파가 먹히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에요. <부산행>이 칸에서도 분유 광고 대목에서 관객의 실소가 터졌거든요.

Renton : 그거 팩트입니까?

충달 : 레알임. 기사 링크 드립니다. (기사) 외국 사람들 눈에도 신파는 구려요. 그럼 <부산행>이 해외에서 먹히는 이유가 뭐냐?

Eternity : 재밌으니까.

충달 : 맞아요. 한국 관객이 환호했던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좋아하는 겁니다. 외국에서 신파 때문에 먹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외국 애들이 바보도 아니고...

Renton : 영화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판적인 한 부분 때문에 영화 전체를 깎아내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신파라고 부르는 일부분 때문에 저평가도 이런 저평가를 받는 것은 부당해요. 솔직히 좀비 장르에 작품성 있고 대단한 작품이 얼마나 있길래 <부산행>이 좀비 닦이 영화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Eternity : 다른 좀비물과 비교했을 때 말씀이시죠?

Renton : 어떤 좀비 영화가 S, A급이길래, <부산행>이 C, D급까지 내려가느냔 말이죠.

충달 : 좀비 영화는 기본적으로 B급이죠.

Renton : 걸작 좀비 영화 따져봤자 원조 격인 조지 로메로 영감님 작품하고, <새벽의 저주>, <28일 후> 정도?

충달 : 그쵸. <부산행>이 좀비 영화로서 구리다는 말은 어폐가 있어요. 언급하신 작품을 빼면 흥행은 고사하고 수입조차 안 되는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나머지는 다 B급이죠. <좀비랜드>, <R.E.C>, <스테이크 랜드>, <새벽의 황당한 저주> 이런 영화들은 메이저를 노린 작품이 아닙니다. 마니아를 겨냥한 B급 정서 가득한 영화였죠.

Renton : 심지어 지금 해외에서 극찬하는 사람 중에 <새벽의 황당한 저주> 감독도 포함됐다는 거. 좀비 장르에 이보다 빠삭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부산행>을 빨아주고 있어요.

충달 : 이런 판국에 "기존 좀비물에 비하면 별로다."라고 하는 기존 좀비물이 과연 뭐냐는 말이죠.

Eternity : 사람들이 과민반응한다는 점은 저도 동의해요. 하지만 서구 좀비 영화에는 신파가 없으니까요. 굳이 좀비물에서까지 신파를 봐야 하냐는 관점에서 충분히 불만을 가질 만 합니다.

Renotn : 신파는 없지만, 가족애는 좀비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Eternity : 그럼 세련되게 표현했어야죠.

충달 :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신파가 구리면 신파가 구리다고 해야지, 왜 신파가 구린데 좀비물로서 구리다고 하냐는 말이죠. 구린 신파 영화는 동의하겠지만, 구린 좀비 영화에는 동의 못 합니다.

Eternity : 연상호 감독이 기존에 보여줬던 애니메이션들 <창>, <돼지의 왕>, <사이비>를 보면 신파와는 전혀 상관없는 작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신파를 잘 찍을 줄 몰라서 분유 광고가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충달 : 사실 신파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작위적으로 눈물을 자아내게 하거나, 권선징악형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를 신파 영화라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좋은 작품성을 보여주는 영화도 있어요. 신파 자체는 나쁜 게 아니에요. 나쁜 건 촌스러움이죠. 연상호는 신파를 다룰 줄 몰랐고, 그래서 이런 촌스러운 신파가 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신파가 뭔지 모르는 기분?

Eternity : 제가 감독이었으면 분유 광고에서 회상신 빼고 그림자가 추락하는 장면만 넣고 끝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훨씬 쿨하고 세련되어지죠.

충달 : 문제는 촌스러움이죠.

Eternity : 이랏샤이마세도 좀 변명을 해보자면, 이 장면은 신파는 아니고 개연성에 문제가 있는 뜬금없는 장면입니다. 아마 연상호는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결말부터 생각해놨을 겁니다. 이를 통해 불신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자 했어요.

충달 : 결국, 메시지를 담고 싶어서 시나리오에 무리수를 둔 셈이죠.

Eternity : 그런 면에서 연상호가 어설픈 봉준호로 느껴져요. 봉준호였다면 그 과정이 매끄러웠을 겁니다.

충달 : 왜냐면 봉준호는 자기 작품에 바늘만 한 구멍이 있으면 그걸 틀어막을 사람이니까요. 디테일의 지배자죠.

Eternity : 그게 봉준호의 무서움이죠. 제2의 봉준호라는 말이 있지만, 아직 어설퍼요.

충달 : 아직 봉준호 될라믄 멀었는데... 누가 그래요?

Eternity : 제가요. 어헣↗ 뭐 <부산행>과 <괴물>을 비교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만약에 마지막에 군인들이 생존자를 쏴 죽이고 좀비였다고 거짓 보고했다면 보다 연상호답고, <괴물> 같은 씁쓸함이 진했을 겁니다. 근데 이러면 흥행이...

Renton : 그런 건 할리우드에서도 안 돼요. 여자하고 아이는 절대 안 죽이거든요. 심지어 임산부인데...

Eternity : 그런데 살려야 한다고 노래 부르고 이러면서 영화가 산으로 가버리니...

충달 : <부산행>이 참 꿀잼상에 어울리는 게 이런 구멍들이 있는데도 그 구멍을 상쇄시킬 만큼 짜릿했습니다.

Renton : 장르 영화로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쾌감을 선사했죠.

충달 : 그래서 제가 나머지는 평이한데 오락성만 5점 만점을 줬어요. 그럼 Renton님 작품 들어보죠.

Renton : 마고 로비를 생각하며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주고 싶었으나, 너무나 재미없었던 관계로.

충달 : 마고 로비만으로 똥상을?

Renton : 정말 화면에서 꿀이 흘렀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재미없어서... 그래서 결론은 <데드풀>

Eternity, 충달 : 크으~ <데드풀>.

Renton : 내가 좋아하는 마블 작품 1번이 <가디언 오브 갤럭시>, 2번이 <앤트맨>이었는데 2번이 <데드풀>로 바뀌었어요.

Eternity : <데드풀>은 정말 낄낄거리면서 볼 수 있는 영화였어요. 캐릭터가 영화라는 틀을 벗어나 관객에게 말을 거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

Renton : 차기작이 정말 기대됩니다.

충달 : 그런데 <데드풀> 차기작이 난항을 겪고 있다네요. 감독도 사임하고...

Renton : 사실 <데드풀>보다 기대했던 건 <수어사이드 스쿼드>인데...

충달 : 아이고 DC야. 그만 좀 닦아라. 헐겠다.

Renton : <아이언맨>이후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이 속속 개봉하면서 마블 히어로 영화 공식이 생겼어요. 거기에 맞춰 영화를 뚝딱뚝딱 찍어내는데 이게 또 희한하게 괜찮단 말이지. 명품까진 아니더라도 훌륭한 브랜드의 기성품 같아요. 근데 이게 슬슬 질리더라고... 브랜드의 수명을 늘리려면 한정판 같은 작품을 찍어줘야 하는데 그게 <가디언 오브 갤럭시>였고, 올해는 <데드풀>이었습니다. 물론 <데드풀>은 한정판치고는 너무 쌈마이풍이긴 한데, 그게 마블 브랜드의 숨은 마니아들의 취향을 확실히 저격했고, 오히려 마블 작품들의 수명을 늘려줄 거라 생각해요. 사실 이렇게 주절주절 떠들었지만, 이 역할은 이미 <가오갤>이 하고 있었고, 나에겐 <가오갤> 미만 잡이라. 크크. 뭐 그래도 올해는 <데드풀>입니다.

충달 : 규격화하면 대개 싫증나기 마련인데, 마블은 각 히어로를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며 이를 극복하고 있죠. 기성품이지만, 정장도 팔고, 캐주얼도 팔고, 스포츠 웨어도 팔고, 속옷도 팔고. 지루해질 틈이 없네요.

Renton : 아! 기성품이 우리나라에도 있긴 하지. CJ 류 영화. 그런데 이건 할아버지, 할머니 모셔놓고 옥장판 파는 느낌인데... 배우 하고 배급빨로 생명 연장 중인데 빨리 숨 좀 끊어졌으면 좋겠네요.

충달 : 그럼 똥상은 <데드풀>, <부산행>, <부산행>으로 정리하겠습니다.






10. 은똥상 (2등상)

충달 : 이제 은똥상입니다. 보통 작품상, 감독상 이렇게 구분하잖아요. 저는 별로 의미 없는 것 같아요. 감독상이 사실상 2등상인지라... 그래서 우리는 2등상으로 은똥상을 선정하도록 합시다.

Eternity : 저는 1등은 일찍이 정했어요. 그래서 2등을 무엇으로 할지 올해 본 영화를 쭉 훑어봤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오늘 한 번도 언급 안 됐어요. 그래서 꼭 짚고 넘어가고자 고른 작품은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Renton : 닦으러 가는 거야?

Eternity : 제가 볼 때 <배대슈>는 종교 영화이자 페미니즘 영화입니다. 이 작품에서 갈등해결의 핵심인 마사라는 존재, 즉 엄마라는 존재는 가족애를 넘어서는 인류애를 상징합니다. 슈퍼맨과 배트맨, 두 히어로를 지구의 구원자 즉, 예수로 본다면 마사는 성모 마리아가 됩니다. 또 때로는 마돈나, 남성들의 이상향도 되죠. 그래서 마사, 마리아, 마돈나 이 "3마"에 주목해봤습니다. 결국 제가 볼 때 잭 스나이더는 페미니스트였어요. 그것도 아주 급진적인.

Renton : 신선한 접근이네. 잭 스나이더가 찍은 영화가 <새벽의 저주>, <300>, <슈퍼맨>인데 크크크크 페미니스트가 되다니 크크크크크크.

Eternity : 단순한 가족애가 아니라 인류애의 표상인 거죠. 남혐 여혐을 극복하자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어요.

Renton : 이거 PGR이 아니라 듀나 게시판 아닙니까? DAMA아님?

Eternity : 마사라는 이름도 감독이 그냥 지은 게 아니에요. 마돈나와 마리아를 연상시키기 위해 마 씨로 정한 겁니다. 결국, 정리하자면 “가장 마초적인 것이 가장 페미니스트적인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싶네요.

충달 : 음... 역시 통념의 빈틈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분석이군요.

Eternity : 크크크크. 아 나 더 이상 못 하겠어. 여기까지 개드립이었습니다. 크크크크.

충달 : 아 이 사람 쫄보네. 그렇게 금방 실토하면 어떡함?

Eternity : 원래 Renton님 반응이 궁금해서 개드립 던진 건데, Renton님 반응이 너무 덤덤하잖아.

Renton : 왜냐면, 나 <배대슈>를 안 봤어. 그래서 그럴 수도 있나 보다 했지.

Eternity : 아니 그래도 잭 슈나이더를 페미니스트라고 했는데?

Renton : 그게 좀 미친 것 같더라고. 그런데 나는 그런 개소리 좋아하잖아. 크크크. 취향 저격당해서 재밌게 들었지. 크크크.

충달 : 그럼 은똥상 다시 제대로 가시죠.

Eternity : 저는 은똥상 <라라랜드>입니다.

충달 : 금똥상이 아니고?

Eternity : 아까 <라라랜드>에 관해서 많이 언급했기에 간략하게 말씀드릴게요. 저에게 <라라랜드>는 뮤지컬 영화계의 <그래비티>였습니다. <그래비티>가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관객에게 우주를 체험하는 쾌감을 전달하잖아요. 이전까지 그런 영화는 없었죠. <라라랜드>도 이야기는 단순하고, 고전적이고, 뻔합니다. 어떻게 보면 허술할 수도 있어요. 우연이 많거든요. 그러나 이전에 뮤지컬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황홀한 체험을 선사했습니다.

충달 : <라라랜드>가 최근의 뮤지컬 영화와는 사뭇 다르죠. 대신 저엉말 옛날 뮤지컬 영화에서는 많은 부분을 차용했어요.

Renton : 그런 면에서 뮤지컬 영화의 흐름도 한 바퀴 돌았다고 봅니다. 바즈 루어만이 <물랑 루즈>로 화려한 뮤지컬 영화의 기조를 열었다면, <라라랜드>가 <사랑은 비를 타고> 시절의 뮤지컬 복고를 불러왔습니다. 뮤지컬 키드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뮤지컬 영화였어요. 단, 아쉬운 점이 있다면 뮤지컬 영화는 뮤지컬로 승부해야 하는데, 중반 이후부터 뮤지컬은 장치로만 쓰이고 영화에 방점이 찍힙니다. 뮤지컬 영화라기보다는 <비긴 어게인> 같은 음악 영화랄까요? 그런데 마지막 엔딩신으로 영화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반전시켰죠.

Eternity : 그런데 엔딩신이 왜 대단할까요?

충달 :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선택하지 못한 길이 있어요. 그리고 회한이 담기죠. <라라랜드>의 엔딩신은 그 회한을 담았습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이랬다면, 계속 사랑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마치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결혼식을 찾아갔을 때 느낄 법한 사무치는 감정. 이를 짧은 시간 동안 환상적인 영상 안에 압축해 놓았어요.

Renton : 마치 그 엔딩신을 위해 두 시간의 영화를 만든 기분이었죠. 그리고 둘이 눈을 마주치고 마무리 지을 때 여운이...

충달 : 회한의 5분 뒤에 나오는 눈빛에 후회가 없었어요.

Renton : 그래서 <화양연화>나 <이터널 선샤인>이 떠오릅니다. 엔딩의 시선은 <위플래쉬>의 마지막 컷이 떠오르기도 했죠. 마지막에 복잡 미묘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이심전심합니다.

충달 : 글로는 이런 감성을 짧고 강렬하게 빡! 하고 보여줄 수 없어요.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감성입니다.

Renton : 그런데 영화는 사랑스럽고 따뜻한데, 감독은 무지 냉정해요. 사랑을 보는 시각이 차갑습니다.

Eternity : 꿈과 사랑 사이에서 선택하게 하는데.

Renton : 데미언 셔젤 작품에 나오는 애들은 전부 꿈을 선택하죠.

Eternity : 꿈과 사랑을 모두 쟁취하는 경우가 없어요.

충달 : 나는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요. 데미언 셔젤이 처음에는 <라라랜드>를 찍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돈이 많이 들고, 투자받기도 어려워서 대신 <위플래쉬>를 준비합니다. 2년 동안 <위플래쉬>를 준비해서 성공하고 나서야 <라라랜드>를 만들었죠. 그렇게 와신상담하면서 <위플래쉬>를 만들 동안 여자가 남아있었겠냐고.

Eternity : 풉. 아니 이건 뭔 소리야. 크크크크.

충달 :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들었다는 말이죠. 꿈을 좇느라고 연애를 포기하거나 등한시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Eternity : <라라랜드>에서 우연이 많다 보니 시나리오가 아쉽다는 지적이 계속 나와요. 마지막에는 시간이 너무 갑작스럽게 흘러가 당황스럽다는 말도 나오죠.

충달 : 그런데 시간을 급격하게 뛰어넘은 연출은 비난할 거리가 안 돼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시면 남녀 주인공이 집으로 들어갔다가 바로 다음 컷에서 남자 주인공과 그의 아들이 집에서 나옵니다. 둘이 연애하고 결혼하고 살림 차리는 이야기가 컷과 컷 사이에 새겨진 셈이죠. 굉장히 칭송받는 컷 전환입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점프하는 연출은 시간의 제약이 걸린 영화의 특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칭찬해줘야 할 일이죠.

Eternity : 그럼 우연이 많은 부분은요?

충달 : 우연은 무조건 비판받아야 할 문제입니다. 시나리오에 우연이 들어오면 그건 무조건 감점이죠. 그런데 이걸 커버하는 게 엔딩입니다. 엔딩에서 기존에 있었던 '우연'을 '만약'으로 치환하거든요. 덕분에 우연이 허락됩니다.

Renton : 엔딩이 영화를 바꿔놨죠.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은똥상은 <라라랜드>입니다. 뭐 1등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라.

충달 : 그럼 저만 말씀드리면 되겠네요. 저의 은똥상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Eternity : 개봉한 지 얼마 안 됐죠? 관객 수는 어때요?

충달 : 관객 수 2만 명 넘어서 흥행몰이 중이라고. 크크크크.

Eternity : 2만 명... ㅠ.ㅠ

충달 :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정치적인 영화입니다. 복지에 관한 감독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생각하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올해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지를 어렵게 풀어내지 않아요. 소시민의 삶 속에 녹여내어 의외로 접근하기 쉽습니다.

Eternity : 그래도 은똥상을 주려면 메시지만 좋아서는 약하지 않나요?

충달 : 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올해 봤던 어떤 영화보다도 심금을 울렸어요. 영화 곳곳에 무거운 눈물에 억장이 무너지는 장면이 존재합니다. 제가 눈물이 헤픈 편이지만, 그렇다고 뚝뚝 떨어질 정도로 우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그런데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서 얼굴이 눈물범벅이 될 정도로 울었습니다. 그렇다고 억지 신파는 아닙니다. 전체적인 기조는 담담한 편입니다.

Eternity : 안 지루해요?

충달 : 지루하다고 할 사람도 있겠죠. 뭐 <부산행>도 지루하다는 사람이 있는 걸요. 이건 취향 문제고. 영화의 호흡이나 구성은 무난합니다. TV 드라마와 비슷하거나 조금 느린 정도. 절대 현학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Eternity : 그럼 은똥상은 이렇게 마무리합시다. <라라랜드>, <라라랜드>, <나, 다니엘 블레이크>







11. 금똥상 (1등상)

충달 : 자, 이제 대망의 금똥상입니다. 올해 최고의 영화를 뽑는 시간이 왔습니다.

Eternity : 뭐 충달님 금똥상은 뻔해 보이는데. 이미 얘기가 많이 나왔잖아요? 빨리 넘어가시죠.

충달 : (흥칫뿡) 네. 제 금똥상은 <라라랜드>입니다. 이유는 주구장창 이야기했으니 넘어가시죠. ㅠ.ㅠ

Renton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을 누르고 <라라랜드>를 선정한 이유는 들어야죠. <캐롤>도 좋았다고 그랬잖아요.

충달 : 솔직히 <캐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라라랜드>는 저한테 다 만점짜리 영화였어요.

Renton :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라랜드>인 이유는 대중영합주의자라서?

Eternity : 나는 충달님 맘을 좀 알 것 같아요. 괜히 <캐롤>이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뽑으면 사람들이 "쟤 뭔데 영잘알 코스프레야? 잘난 척 쩌네." 이런 소리 들을까 봐 <라라랜드> 뽑은 거죠.

충달 : 와... 사람을 순식간에 쓰레기로 만드네...

Eternity : 어헣헣↗

충달 : 하지만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아요. 저는 모든 예술이 대중하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올해 많은 평론가가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지만, 저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작품이 <자객 섭은낭>이었어요. 저는 솔직히 미장센 빼고는 담긴 메시지조차도 별로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거 따지기 전에 영화가 가진 호흡이 너무 지루했습니다. 감독 성향이고, 고전미이고 나발이고 그냥 영화가 너무 느려서 몰입도가 꽝 이었어요. <자객 섭은낭>은 제가 제일 싫어하는 현학주의가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Eternity : 그런데 <캐롤>은 재밌었잖아요.

충달 : 재밌으니깐 열심히 빨았죠. 크크. 사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보다는 <캐롤>이나 <라라랜드>가 종합적인 면에서 우위입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아무래도 영상 쾌감은 적죠. 규모의 한계가 있으니...

Eternity : 그런데 왜 <캐롤>이 아니라 <라라랜드>죠? <캐롤>은 깔 게 없다면서.

충달 : 뿅 갔으니깐.

Eternity : 에이. 결국 자기 취향이라는 말이네.

충달 : 올해 어떤 영화도 <라라랜드>만큼 황홀한 영화가 없었어요. 올해뿐만 아니라 인생 베스트에 들어갈 만큼 좋았습니다.

Eternity : 그런데 <라라랜드>는 혹평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불만도 생기죠.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칭송하니까 <라라랜드>가 별로였던 사람들은 오히려 반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충달 : 그런데 일단 그런 얘기가 나오려면 영화가 흥행해야 합니다. <캐롤>은 주변이나 인터넷을 둘러봐도 별로라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왜냐하면, 볼 사람만 보니깐. 이미 극장을 가든 다운을 받든 <캐롤>을 볼 정도면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거든요.

Renton : <라라랜드>는 장기적으로 흥행할 겁니다. 4, 500만은 가겠죠.

충달 : 그럼 <라라랜드>는 이쯤하고 Renton님 말씀해주시죠.

Renton : 저는 올초 아카데미에서 다뤘던 작품은 웬만하면 넘어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를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빅쇼트>.

Eternity : <빅쇼트>가 왜 좋았어요?

Renton : 영화를 보다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관련 책을 보고 다시 영화를 찾아볼 정도로 완전히 영화에 꽂혔어요.

충달 : 이분도 뿅 가신 거네. 나보고 뿅 갔다고 뭐라 할 게 아니네.

Renton : 완전히 취향 저격당했어요. 특히 직설적이라 좋았습니다. "너희들 이거 모르지? 배워. 설명해줄게. 대신 다음에는 이러지 마." 이런 식으로 관객을 계몽하는 면도 있는데, 이렇게 쿨내 풀풀 풍기면서 하니깐 꼴 뵈기 싫지도 않았어요.

Eternity : Renton님은 형식 파괴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빅쇼트>나 <데드풀>이나. 여자도 자유분방한 여자 좋아하실 것 같고.

충달 : 삐빅. 유부남입니다. 위험해지기 전에 Eternity님의 금똥상을 들어보죠.

Eternity : 저는 이 영화를 1등 주기 위해서 지금까지 계속 참았습니다. 시나리오상도 참았고, 사운드상도 참았어요. <곡성>이 금똥상입니다. 무언가를 평가할 때는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포트라이트> 같은 영화는 무결점이니 뭐니 설명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금똥상이라면? 나에게 제일 좋았던 영화. 말 그대로 개쩌는 영화.

충달 : 아니 자기도 뿅 간 영화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Eternity : 으헣헣↗

Renton : 원래 1등이 그런 겁니다.

Eternity : 다른 영화들은 저를 감탄하게 만들었어요. <스포트라이트>, <캐롤>, <라라랜드> 모두 그랬죠. 그런데 <곡성>은 나를 뒤흔들었어요. 보고 나서 욕이 나오더군요. "와... XX 뭐지?"

충달 : 보고 나서 끊었던 담배를 피우셨잖아요. 크크.

Eternity : <곡성>이 가진 의미를 복잡하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해체의 미학이니, 포스트모더니즘적 서사니. 그런데 그걸 다 떠나서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도 어떻게 끝날지 전혀 알 수 없었거든요. 잔뜩 쫄아든 상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죠. 다 보고 나서도 "이게 뭐지? 내가 뭘 본거지?"싶고... 이렇게 관객을 뒤흔들면서 혼을 빼놓는 영화는 처음이었습니다.

충달 : 하나 장담컨대 앞으로 <라라랜드> 같은 영화는 또 나올지 몰라도 <곡성> 같은 영화는 다시 안 나올 겁니다.

Eternity : <라라랜드>는 참조가 되지만, <곡성>을 참조했다가는 망하기 딱 좋죠.

충달 : 그럼 금똥상은 <빅쇼트>, <곡성>, <라라랜드>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마무으리

충달 : 수상작은 다 선정했으니 이제 올해 영화계를 정리해보죠. 일단 올해 한국 영화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Renton : 올해 기대했던 건 나홍진, 김지운, 박찬욱의 귀환이었죠. 더하기 연상호.

충달 : 김지운만 빼면 나머지는 활약 좋았습니다.

Eternity : 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풍성했어요.

Renton : 작년에는 외국 영화도 별로였습니다.

충달 : 올해 좋은 영화가 몰린 이유가 작년에 개봉했어야 할 영화들이 아카데미 주간에 몰리면서 한국에서 1~2월에 개봉했거든요. <캐롤>도 솔직히 작년 영화였어요. 덕분에 올해 영화 복이 터졌습니다.

Renton : 작년에 비하면 국외/국내 모두 풍성했습니다. 좋았어요. 2016년 영화계.

충달 : 올해 인디 영화가 주춤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작년보다 더 좋았어요. <동주>, <4등>, <우리들>, <최악의 하루> 등등 좋은 정도가 아니라 명작이라 부를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럼 이제 PAMA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짧게 감상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Eternity : 재작년에 최고의 영화로 <보이후드>를 뽑았고, 작년에는 이런 자리가 없었지만, 최고의 영화로 뽑아줄 한국 영화가 없었어요. 그래서 올해는 <곡성>의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쟁쟁한 외국 영화들 사이에서 1등으로 뽑을 수 있는 한국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Renton : 좋은 해는 1, 2등을 고민할 수 있는 해입니다. 막바지에 <라라랜드>가 나와 수상작을 고민하게 만들어줘서 재밌었어요. 한국 영화가 선전한 점도 좋았습니다. 내년에 돌아올 봉준호, 류승완을 기대해 봅니다.

충달 : 저는 올해 좋은 영화가 정말 많았습니다. 굵직굵직한 작품뿐만 아니라 자잘한 영화들도 선정해주지 않으면 가슴이 아플 것처럼 아끼는 작품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싶어 올해 좋았던 영화를 전부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영화가 많았던 2016년이... 참... 마냥 행복하지 못해 아쉽네요. 오늘 PAMA도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는 PGR에 참가 공고도 올려서 더 크게 벌여보고 싶네요. 오랜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PAMA 수상작 리스트 (순서는 Renton, Eternity, 충달 순)

1. 사운드상 : <라라랜드>, <캐롤>, <라라랜드>
2. 시나리오상 : <곡성>, <스포트라이트>, <곡성>
3. 편집상 : <빅쇼트>, <아가씨>,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4. 비주얼상 : <정글북>, <라라랜드>, <라라랜드>
5. 남자배우상 : 스티브 카렐(빅쇼트), 황정민(곡성), 제프 브리지스(로스트 인 더스트)
6. 여자배우상 : 마고 로비(수어사이드 스쿼드), 엠마 스톤(라라랜드), 루니 마라(캐롤)
7. 발연기상 : 추성훈(인천상륙작전), 정우성(아수라), 리암 니슨(인천상륙작전)
8. 변비상(최악의 작품상) : <조이>, <검사외전>, <인천상륙작전>
9. 똥상(꿀잼상) : <데드풀>, <부산행>, <부산행>
10. 은똥상(2등상) : <라라랜드>, <라라랜드>, <나, 다니엘 블레이크>
11. 금똥상(1등상) : <빅쇼트>, <곡성>, <라라랜드>





여러분의 PAMA를 뽑아주세요.

1. 사운드상 :
2. 시나리오상 :
3. 편집상 :
4. 비주얼상 :
5. 남자배우상 :
6. 여자배우상 :
7. 발연기상 :
8. 변비상(최악의 작품상) :
9. 똥상(꿀잼상) :
10. 은똥상(2등상) :
11. 금똥상(1등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