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설날이 유독 일찍 찾아오는 것 같다.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 화목한 시간을 보낼 생각에 벌써 설레는 분도 있겠지만, 반대로 다가오는 명절이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사실 그런 사람이 더 많은 것 같...) 특히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바로 명절 죄인(?)들이다. 설날에는 오라를 받아야 할 죄인이 더 늘어나는데, 그중 하나가 대학에 떨어진 수험생이고, 비슷한 죄목으로 취업에 실패한 백수가 있으며, 마지막이 아직도(?)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노처녀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억울하고 섭섭한 사람을 꼽으라면 결혼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연애/결혼이 입시처럼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취업처럼 먹고 살기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도 아니다. 특히 독신으로 살고자 하는 소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명절 때 결혼 언제 하냐는 잔소리만큼 듣기 싫은 것도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항하기 위한 재치 넘치는 응대 방법도 존재하지만, 장난처럼 넘기기에는 결혼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크다. 결혼을 비롯한 다양한 삶의 방식에 관하여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순간이다.
<혼자 살아도 괜찮아>는 이러한 고민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쓴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용은 그런 예상과 전혀 달랐다. 에세이가 아니라 치밀한 사회과학 교양서였다. 특히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결혼이라는 제도에 팩트 폭격을 날린다.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결과도 다수 존재한다. 그렇게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했던 사회의 진실을 낱낱이 까발리고, 나아가 그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비전도 제시한다. 읽고 나면 삶에 관한 시각이 달라질 정도로 엄청난 통찰을 보여준다.
1. 독신의 시대
많은 사람이 결혼을 정상, 독신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미 독신은 지역, 문화, 종교, 인종을 막론하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우리나라는 작년부터 '비혼'이라는 말이 대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식남'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일본의 경우 18~30세 독신 인구 중 여성의 60%, 남성의 70%가 진지하게 만나는 이성이 없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의 1/4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된다. 선진국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이혼율이 증가하며, 출산율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혼자 살아도 괜찮아> 30p
가장 충격적인 데이터는 유럽의 독신 인구 비율이었다. 유럽 주요 도시의 1인 가구 비율은 이미 50%를 넘어섰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독신이 다수고, 결혼이 소수인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다. 결혼/독신 여부를 가지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 자체가 잘못이지만, 다수가 정상이라는 폭력적인 논리를 그대로 가져온다면, 독신이 정상이고 결혼이 비정상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이제 결혼 잔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대답하자.
"남들 다 하는 걸 왜 안 하겠다는 거야?"
"남들도 안 하는데요?"
2. 과연 결혼이 답일까?
결혼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 많이 가져오는 논리가 있다. 혼자 살면 나이 들어 외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결혼으로 노년기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을까? 결혼했더라도 이혼, 별거, 사별로 인해 마찬가지로 외로운 노년을 맞이할 수도 있다. 반대로 독신으로 살더라도 노년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과연 팩트는 무엇일까?
<혼자 살아도 괜찮아> 75p
저자는 30개국에 걸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조사해서 찾은 외로움 지표를 분석해 도표를 만들었다. (말했다시피 데이터가 어마무시하다) 도표를 보면 젊은 시절에는 결혼이 외로움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지만, 노년에는 오히려 독신이 외로움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 들어 외롭고 쓸쓸하지 않기 위해 결혼해야 한다는 논리는 완전히 틀렸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결과가 나오는 데는 상대적 박탈감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급작스럽게 혼자 살 게 되면 원래 혼자 살던 것보다 더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손실 회피 편향까지 더해지면 상실감은 더 크게 작용한다. 혹시 '내 노년은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씁쓸한 진리를 말해주겠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혼은 결국 사별이나 이혼으로 끝난다. (혹은 둘 다 죽거나) 결혼으로 노년기 외로움을 피해갈 수는 없는 셈이다.
3.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
앞선 이유로 따박따박 결혼 잔소리에 반박하면 "그래서 어쩔 거야? 혼자 쓸쓸히 늙어 죽을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꼭 독신이라고 외롭게 살라는 법은 없다. 어떻게? 과거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있었다면, 이제는 사회적 자산을 비롯한 다양한 공동체가 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처럼 인적 네트워크 단위로 개인의 삶이 조직되는 변화를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networked individualism)'라고 한다. 실제로 친목 모임과 사회 활동은 행복도와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혼자 살아도 괜찮아> 161p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통찰을 얻은 부분이다. 말 그대로 눈이 뜨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최근 들어 결혼한 친구일수록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니 주변 친구들이 거의 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가정과 육아에 바쁘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들과의 만남이 뜸해졌다. 책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탐욕스러운 결혼'이라고 불렀다. 정말 결혼이라는 게 모든 인간관계를 빨아들이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살아도 괜찮아>는 독신의 비전으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를 보여주었지만, 내 생각에는 결혼한 커플에게도 매우 필요한 삶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결혼이 행복에 기여하는 '허니문 효과'는 2년이 지나면 줄어들기 시작한다. 결혼 생활 내내 '서로만 바라보는 것'은 로맨스가 아닌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다양한 인간관계 네트워크를 갖춰야 서로를 향한 고마움과 애틋함이 더해지리라 생각한다.
결혼을 앞둔 입장에서 <혼자 살아도 괜찮아>는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책이었다. 독신 라이프를 생각하고 있다면, 행복한 독신 생활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더라도 우리가 결혼에 관하여 알고 있던 오해를 깨부수고 팩트가 무엇인지 알려주기에 꼭 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결혼과 독신의 장점을 모두 가져가는 통찰을 얻을 수 있기에 모두가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읽자마자 여자친구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하기도 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정말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인간관계만이 과거의 모습으로 남을 것이라는 기대는 헛된 희망에 불과할 것이다. 결혼, 가정, 연애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다면 <혼자 살아도 괜찮아>를 꼭 보길 바란다. 더는 과거에 얽매인 잔소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진지하게 행복한 삶을 고민하고 싶다면 온 가족이 함께 읽고 미래를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개인적으로 결혼 잔소리가 유독 심한 분에게 선물로 드리면 좋을 것 같다. 설날 오기 전에 빨리빨리!)
※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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