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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휴지통

로또에 당첨됐다


 "로또에 당첨되고 싶으세요? 로또를 사세요."
  그래서 나는 매주 로또를 산다. 딱 만 원어치. 한 달에 4만 원. 알바로 버는 돈이 45만 원 이니깐 대충 수익의 10%를 쏟아붓고 있다. 엄청난 투자잖아? 그러나 워낙 기대값이 낮은 투자종목이다 보니 수익률은 처참했다. 석 달 간 벌어들인 돈은 0.5만 원. 수익률은 -96%. 당연한 결과려나. 그래도 당첨된다면 말 그대로 대박은 대박이니까. 어차피 매주 허공에 담배 연기로 만 원씩 날려 먹는데, 기부하는 셈 치고 주당 만 원 쓰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로또는 나눔이라잖나. 

  저번 주 짤평 작품은 <스노든>이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민감하고 핫한 정치 소재로 만든 영화다. 오, 이건 봐야 해! 다행히 추천 수도 제일 많아! 앗싸 보러 가자! 하지만 볼 수 없었다. 알바를 쉬는 날은 수요일. 그러나 <스노든>의 개봉일은 목요일. 괜찮아. 목요일에 알바 끝나고 보지 뭐. 그런데 즐겨 찾는 메가박스에 <스노든>이 없다? 괜찮아. 여긴 신촌인걸. 버스 한 정거장 거리에 극장만 4개인걸. 하지만 상영시간이 최악이다. 조조 아니면 야간. 그것도 아니면 낮 12시... 롯데시네마, CGV 어딜 봐도 마찬가지다. 흠... 이거 난감한데? 그래도 짤평을 기다리는 독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조조와 낮 타임은 알바 때문에 볼 수 없다. 그래 야간, 야간을 노려보자.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바빴다. 공부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몇 가지 집안 문제를 처리해야 했고, 그 때문에 밀렸던 집안일도 해야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도 만났고, 여자친구도 만나야 했다. 그리고 공부도 해야 했다.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다. 기력은 더더욱 없었다.

  우리 집은 초고속 인터넷 1세대였다. 무려 두루넷 설치 시범 구역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탈 모뎀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게 족쇄가 되었다. 주변 지역에 착착 기가 인터넷이 보급되는 동안 우리 집 주변만 계속 케이블에 머무르고 있다.) 그 덕에 나는 학창 시절 많은 영상물을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물론 불법으로. 뭐 영상물의 절반 정도도 불법 영상물이었고... 덕분에 영화는 실컷 봤다. 물론 불법 복제가 나쁘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래서 뭐? 난 돈이 없었고, 나의 범죄는 걸릴 리 없었다. 와레즈와 당나귀를 거쳐 토렌트에 이르기까지. 학창 시절 나의 영화 인생은 구 할이 불법이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고, 데이트라는 걸 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비중이 늘어났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다. 물론 나의 홈시어터(라고 쓰고 그냥 PC라고 읽는다)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극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왕십리 IMAX까지 찾아다닐 정도의 열혈 극장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극장 애호가가 되었다. 그 사이 와레즈는 사라졌고, 당나귀는 망했다. 토렌트는 여전히 쓰고 있지만, 영화를 받아 보는 일은 별로 없었다. 무얼 받아보냐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영화 리뷰를 시작한 이후로는 나름 도덕적인 이유도 더해졌다. 비평도 창작의 일종인데, 다른 창작자의 노력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비평을 쓴 이래 토렌트로 영화를 본 경우는 세 번을 넘지 않았다. 그마저도 수입이 안 되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고전들이었다. 

  <스노든>을 보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어느 날. 구글에 '스노든 토렌트'를 쳐 보았다. 작년에 출시한 작품답게 이미 토렌트로 배포되고 있었다. 그냥 이걸 받아볼까? 하지만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어쩔까 저쩔까 고민하다가 요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인터넷으로 티켓을 예매하고 토렌트로 받아보는 거야! 어쨌든 돈은 냈잖아. 이 얘기를 지인에게 전하자. "그렇게 맘에 걸리면 그냥 보질 말든가... 그냥 토렌트만 받든가..."라고 말했다. 처음 떠올렸을 때는 나름 묘수라고 생각했는데, 한 발 짝 떨어져 생각해보니 참 등신 같은 발상이었다...

  그렇게 유야무야 시간은 흐르고, 주말이 지나고 새 한 주가 시작되었다. 짤평을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바쁜 일들이 나름 정리되었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싱숭생숭했다. 이런 게 압박인가? 스트레스? 고민해봤자 <스노든> 상영시간은 여전히 똥망이었다. 나는 과감히 <스노든>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아아. 이래서 포기하면 편하다고 하는구나. 그 순간 현실의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커다란 응가를 싼 것처럼 후련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안도감은 찰나에 그치고 압박감이 다시 엄습했다. 아, 짤평. 이번 주 결국 못 쓰네. 그냥 넘어가면 다음 주 후보작은 어떻게 고르지? 아아... 응가를 크게 쌌다고 좋아했건만 뒤는 닦아야 했다. 그대로 뭉개고 앉아버리기엔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다행히 아껴놓은 총알이 있었다. 여기저기 뿌려놓은 댓글이 아까워 그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기에 지인과 나눈 이야기를 더하니 그럭저럭 구조가 잡혔다. 그래 짤평은 못 쓰니깐, 이 글로 대체해야겠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다른 사람들은 글을 쓰는 데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일까? 아니다. 노력은 수치화하기 어렵다. 질문을 바꿔보자. 얼마만큼 시간을 투자할까? 나는 월요일 하루를 전부 글쓰기에 쏟았다. 본래 짤평을 쓰면 반나절을 투자한다. 그리고 휴일이니깐 나머지 시간은 논다. 이번 주에는 이것저것 일 처리 하느라 별로 쉬질 못했다. 글도 쓸 겸, 한숨 쉴 겸, 겸사겸사 글쓰기에 투자하기로 했다. 당최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수험생은 공부 이외의 일을 하려면 이렇게 궁색한 변명거리를 마련해야 한다. 결론은 공부는 제끼고 글을 썼다는 말이다. 그렇게 7,000자짜리 글을 써서 올렸다. 그제서야 뒤가 뽀송뽀송한 기분이었다. 

  글을 올리고 5분 만에 댓글이 달렸다. 이상하다. 5분 만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 아닌데. 중간에 올려놓은 영상만 봐도 5분이 넘는데. 글은 보지도 않는 건가? 에이, 그냥 동영상만 안 봤겠지. 그래도 쪼까 기분이 껄적지근했다. 하루종일 걸려서 아둥바둥 썼는데...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게. 나는 무슨 영광을 보려고 글을 쓰는 걸까? 어차피 돈도 안 되는 거. 아... 돈 벌고 싶다. 로또나 당첨됐으면 좋겠다. 아 맞다. 로또. 지난주에 얼마나 바빴으면 로또 당첨 확인하는 걸 꼼빡 까먹고 있었다. 지갑 속에 꼬깃꼬깃 넣어놓은 로또 용지를 꺼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번호를 입력하고 '결과 보기' 버튼을 뙇 눌렀더니... 오잉? 초록 글자가 많네? 이거 당첨인가? 오오. 4개나 맞췄어! 4등이다. 5만 원 당첨이었다.

  "여러분 로또에 당첨되고 싶으세요? 로또를 사세요. 꿈을 이루고 싶으세요? 그러면 꿈을 좇으세요." 
이런 생각으로 돈 한 푼 안 되는 일을 놓지 않고 살았다. 정말 로또 당첨 수준이겠지만, 그래도 꿈이니깐. 그런데 꼴랑 5만 원짜리 로또에 당첨되었을 뿐인데 차라리 로또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건 돈이 되잖아? 사람에게 있어 꿈이라는 게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내 삶의 모든 찬란한 순간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선사한 건 절반이 꿈이고, 절반이 그녀였으니깐. 매너리즘과 성장을 반복하던 글쓰기였건만, 언제부턴가 매너리즘이 찾아오는 시기가 잦아졌다. 이제는 성장 사이에 매너리즘이 있는 게 아니라, 매너리즘 사이에 가끔 성장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지나온 건 세월이고 남은 건 현실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꿈도 곳간이 있어야 나온다. 생존의 굴레에서 사는 사람은 삶의 목표를 추구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백수다. 정확히는 반쪽짜리 알바다. 고시원 총무라는 이름으로 일반, 공부반 하고 있는... 실상 버는 건 없다고 봐도 된다. 뭐랄까... 현대 도시인으로서 생존 능력이 전무하다고나 할까. 그럼 나는 뭔 수로 꿈을 좇으며 살았을까? 뭐긴 부모님 곳간을 털어먹은 거지. 그래서일까? 로또 당첨되면 뭘 할까 상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항상 수백만 원짜리 안마의자였다. 

  요즘에는 친구들 보기가 힘들다. 원체 내가 먼저 연락하고 약속 잡는 타입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점점 얼굴 보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결혼할 때가 되면 그때서야 만날 수 있다. 결혼하면? 영영 못 보는 기분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면 "넌 뭐 하고 사냐?"고들 묻는다. 그럴 때면 내 블로그를 보여준다.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차곡차곡 정리해놓은 나만의 아카이브다. 한 번 진지하게 보고 어떤지 평가 좀 해달라고 부탁해본다. 다들 앞에서는 "그래 보고 나서 얘기해줄게."라고 말한다. 아무도 얘기해준 녀석이 없다. 아무리 글과 책을 멀리하는 시대라지만, 그래서 연락이 없는 건 아니리라. 읽지 않았다기보단, 읽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재능의 한계를 느낀다. 아직 한참 멀었다. 그리고 성장은 너무 더디다.

  한 친구가 내가 말도 안 했는데 블로그를 보고 간 적이 있다. 글을 읽어 준 고마운 친구다. 그 친구가 이리 말했다. "야. 돈 안 되는 일 좀 하지 마." 그렇다. 돈 안 되는 일이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재능이 있고, 없고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그게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 뿐이다. 혹자는 예술을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훌륭한 예술 작품을 리스펙 할 수 있는 수단이 돈밖에 더 있나? 돈이 안 된다는 건 곧 실력이 안 된다는 말이다. 큰돈이 안 되는 건 논외다. 하지만 1원도 벌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뻘짓이다. 

  꿈을 좇는다는 게 이제는 뭔지 잘 모르겠다. 일단 먹고 사는 게 우선이다. 그동안 꿈은 서랍 속 보물 상자(라고 불리는 나이키 신발 상자. 서랍 정리할 때 이만한 게 없더라)에 넣어놔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한 번 넣어두면 죽을 때까지 꺼내지 못 할 것 같다. 이거 진짜 고민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지만, 소크라테스도 먹긴 먹어야 한다. 그런데 먹다보면 돼지가 될 것 같은 상황이랄까? 음... 모르는 일이다. 이러다 배고픈 돼지가 되어버리면 그땐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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